“사회책임보다 가입자 노후”… 투자간섭 반기든 美 최대 연기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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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조원 굴리는 ‘캘퍼스’의 변화

사진 출처 CalPERS 트위터
사진 출처 CalPERS 트위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하원은 지난달 자산 3660억 달러(약 396조 원)를 굴리는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의 터키 신규 투자를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터키 정부가 1915년부터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작 캘퍼스는 의회의 정치적 움직임에 반기를 들었다. 터키 투자를 축소하면 투자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캘퍼스의 터키 관련 투자 규모는 7700만 달러에서 3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캘퍼스는 올해 터키 투자 금지 외에 의회의 민영교도소 투자 금지 법안도 반대했다. 지난해에는 플로리다주 파클랜드 고교 총격 사건 이후 총기 회사에 대한 주식 추가 매각 요구를 거부했다.


○ 캘퍼스, 사회 책임 투자 원칙 재검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 시간) “캘퍼스는 투자를 ‘사회적 행동주의(Social activism)’와 연계한 최초의 공적 연금 중 하나였다. 이제는 이를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고 전했다.

캘퍼스 이사회는 2021년을 목표로 발전용 석탄 채굴 회사, 캘리포니아에서 금지된 총기를 제작하는 회사, 수단과 이란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 등에 대한 투자 금지 등을 포함한 기존 모든 ‘투자 배제 정책(divestment policy)’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현재 계획 중이라고 WSJ는 전했다.

캘퍼스는 1980년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는 원칙을 처음 도입했다. 1986년 인종차별 정책을 택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투자를 배제했다. 2001년 담배회사 주식을 매각했다. 기업을 압박하는 효과가 커 ‘캘퍼스 효과’라는 말까지 나왔다.


○ “세계 구원자냐, 공무원 노후냐” 캘퍼스 딜레마


캘퍼스가 사회 책임 투자 원칙에 대한 재검토에 나선 것은 ‘공무원의 노후 연금 확보’라는 본령에 충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캘퍼스의 자산은 현재 연금 지급 의무액에 비해 139억 달러 모자란다. 2016년 말에는 기대 수익률을 7.5%에서 7.0%로 하향 조정하고 시의 부담을 늘렸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전체 연금 부채가 1조 달러가 넘어 가구당 7만8334달러에 이른다. 여기에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처음 수익률까지 ―3.51%로 곤두박질쳤다. 투자 손익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캘퍼스는 사회 책임 투자로 대체로 수익을 올렸지만, 담배회사 투자 배제로 16년간 35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에는 캘퍼스 이사회에서 담배회사 투자 금지 정책 폐지가 논의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사회 책임 투자 수익률에 더 민감해질 듯

마시 프로스트 캘퍼스 최고경영자(CEO)는 WSJ와 인터뷰에서 “연간 7% 수익률 목표를 맞추려면 모든 자산에 대한 투자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 배제 정책은 정반대로 투자 영역을 축소시킨다”고 말했다. 보스턴칼리지 은퇴연구센터(BCCRR)에 따르면 투자 제한을 요구하는 주의 공적연금 평균 수익률은 그런 의무가 없는 주에 비해 0.40%포인트 낮았다.

다른 지역도 깐깐해지는 추세다. 뉴욕주의 공무원노조와 민주당 소속 감사원장은 공적연금 펀드의 화석연료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는 폐기물 처리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들에 공적연금을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 연기금#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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