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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45년만에 다시 켜졌지만… ‘눈물의 연평도’ 반쪽짜리 불빛만 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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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구자룡]45년만에 다시 켜졌지만… ‘눈물의 연평도’ 반쪽짜리 불빛만 깜박

구자룡 논설위원 입력 2019-05-22 03:00수정 2019-05-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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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밝힌 ‘연평도 등대’
서해 연평도 북쪽 해안도로에서 4km가량 떨어진 북한의 석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석도 인근 배는 중국 어선들로 낮에는 북방한계선(NLL) 북쪽 완충수역에 있다가 밤에는 NLL 남쪽으로도 넘어와 불법 조업을 벌여 해경과 충돌을 빚기도 한다. 연평도 해안가에 북한 선박 접근을 막는 ‘용치’(용의 이빨) 구조물(원안)이 설치되어 있다. 연평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무슨 잘못을 해 얼굴을 가리려고 고깔을 씌웠나.’

17일 오후 7시 20분 대연평도 등대공원에서 45년 만에 다시 불을 밝힌 ‘연평도 등대’를 본 첫 느낌은 이랬다. 360도 회전해 칠흑 같은 바다를 비추며 귀항(歸港)하는 선원의 길잡이가 되는, 도도하고 위용을 자랑하는 일반 등대와는 달랐다. 해발 105m 높이에 세워져 37km 먼바다까지 비춘다지만 등대 전등 주위가 반 이상 가림막으로 가려져 남쪽 방향으로만 비추게 되어 있다. 반쪽 ‘연평도 등대’는 가다 멈춘 남북 화해와 접경 서해 5도의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가다 멈춘 남북화해 상징 ‘반쪽 등대’

17일 45년 만에 다시 켜진 ‘연평도 등대’. 북쪽으로 향한 왼쪽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연평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백령도와 대연평도 등 서해 5도는 북위 38도선 이북이지만 6·25전쟁 후 정전협정에서 북방한계선(NLL) 남쪽 경기 옹진군에 편입됐다. 대연평도 북단과 맞은편 북한 옹진군 부포리는 약 10km에 불과하다. 섬 주민 2300여 명 중 태어난 곳이 북한 땅인 주민도 여럿 있다.

45년 만에 연평도 등대가 다시 켜진 것은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 등 화해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점등식 당일 낮에 청와대는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8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폐쇄 3년여 만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도 이날 승인됐다.

하지만 북한은 19일 노동신문에서 “원조는 하나를 주고 열을 빼앗으려는 약탈의 수단”이라고 맞받았다.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발로 걷어차는 형국이다. 연평도 등대가 바다에 메아리 없는 불빛을 쏟아내는 듯한 허망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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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6·25전쟁 후 남한 영토를 겨냥한 첫 포격 도발이었다. 무차별로 포격당한 연평면 주택가 중 한 곳인 연평리 172번지에는 ‘안보교육장’이 마련돼 있다. 지붕이 뻥 뚫리거나 외벽이 화재로 검게 그을린, 부서진 민가 주택 3채를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북한군 122mm 방사포 추진체도 수거해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부서진 민가를 보면 포격의 상흔이 주민들에게 악몽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을까. 해설사 옹진군청 김명선 씨는 “자신이 당했던 사건 현장에 자주 노출될수록 트라우마로부터 더 빨리 회복된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와서 보라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만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박집 여주인은 “포격 충격으로 출입문이 우그러지고 유리도 다 깨졌다. 또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섬에 남아 있지 못한다”고 했다.

포격당한 민가 3채 그대로 보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의 민가 피해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 검게 그을리고 부서진 민가 폐허터에 북한의 장사정포 발사체를 수거해 전시해 놓았다. 연평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연평도 등대 바로 옆에는 평화공원이 있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과 연평포격 등 세 차례 북한 도발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공원 중앙에는 두 차례 연평해전에서 죽고 다친 25명의 장병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모양이 육지에서 탱크 등 기계화 부대의 진행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용치(龍齒·용의 치아) 구조물을 닮았다. 연평도에서는 용치 구조물이 적 군함이나 선박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안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무력 충돌 희생자 추모 공원과 남북 화해 분위기로 다시 켜진 등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연평도는 긴장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남북 관계의 축소판이다.

등대 재점등을 두고 안보 구멍 논란도 없지 않다. 가림막을 했지만 북한 간첩이 무동력선 등으로 육지로 접근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등대 점등식 현장에서 만난 주민 차모 씨(44)는 “주민을 적의 타깃으로, 볼모로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정식 점등 전에 등대를 켜고 수차례 섬 주위를 돌며 등대 불빛이 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뒤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연평부대는 연평포격 사건 이후 섬에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을 중단했다. 북한이 포사격 훈련 등을 빌미로 포격을 해왔다면 더욱 훈련 강도를 높여 강력 대응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섬에서 훈련을 중단한 것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하지만 섬 주민들 중에는 포 사격 굉음이 없어진 것을 반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연평부대 관계자는 “육지에서 포 실사격 훈련을 하기 때문에 사격 훈련 횟수를 늘렸다”고 말했다.

사실 등대 재점등은 주민들이 야간 조업시간을 늘리기 위해 오랫동안 요구한 민원 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등대는 켰지만 야간 조업시간 연장은 ‘일몰 후 30분, 일출 전 30분’으로 1시간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서해 5도는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는 조업이 금지된다. 야간 조업 중 어선이 NLL에 접근하거나 넘어가 나포되는 등의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육지에서는 철책선 부근에 산책길도 만들면서 NLL 부근 통제는 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특히 NLL 부근에서 치고 빠지면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

북한 석도가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섬 북쪽의 ‘연평부대 ○○○정탐기지대’ 앞 순환도로에 가봤다. NLL 북쪽 완충 수역에 중국 어선 4척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남쪽 완충 수역에 연평도 어민은 접근이 금지돼 있다. 바다의 비무장지대(DMZ) 같은 곳이다. 장정민 옹진군수는 “이곳에서 중국 어선이 어로를 하는 것은 DMZ의 비옥한 땅에 중국 농민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는 격”이라고 했다.

中불법조업 판치는 ‘바다의 DMZ’

NLL 북쪽 완충 해역에 있던 중국 어선은 밤이면 서슴없이 NLL 남쪽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수년 전에는 100척 이상이 새까맣게 바다를 메우기도 했으나 줄었다. ‘서해 5도 특별경비단’이 2년 전 발족하고 중국이 불법 어로 오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인 자체 단속에 나선 것도 한 요인이다. 남북이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 중국 어선의 진입을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지만 기약 없는 일로 보였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해 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등대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인천발 여객선이 당섬 선착장에 도착하면 ‘연평바다역’ 터미널 옆에 세워진 ‘눈물의 연평도’ 가사 돌비석이 손님을 맞는다. 1959년 사라호 태풍 피해를 노래한 것이다. 당시 피해가 컸는데 방송과 통신 부족으로 사전에 경보가 안 된 것도 한 이유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배에서 바라본 연평도. 북한 군과 중국 불법 어선에 안보와 생업이 휘둘리는 이곳이 육지의 무신경 때문에 속울음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연평도 등대#연평해전#연평포격#북한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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