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판검사, 서초동 로펌으로… ‘전관변호사’ 82%가 서울 근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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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上> 더 세진 ‘전관예우 불패’
대한민국 전관예우지도 공직퇴임 변호사 작년 전국 914명
그중 750명이 서울에 사무실
기업 사건 많고 수임료 높아 선호… 서울 변호사 100명중 5명 ‘전관’
‘사건 쏠림 현상’은 지방 더 심해… 특정변호사 비율 서울 7%-대구 26%

“정든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서 새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법원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근 개업한 판사 출신 한 변호사가 이런 내용을 담은 연하장 같은 카드를 만들어 서울 서초동 일대 각급 법원 판사실에 배달했다. 이를 읽어본 한 판사는 “후배들한테 괜히 부담 주는 일이다. 이제는 이런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과 검찰의 정기 인사 직후엔 늘 이른바 ‘연어 전관’들의 변호사 사무실 개소식으로 서초동 법조타운이 들썩거린다. 개소식은 전관예우의 신호탄이다. 동아일보가 법조윤리협의회를 통해 확보한 지난해 전국 14개 지방변호사회 공직퇴임 변호사 현황에 따르면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했다. 일부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리는 현상은 서울보다 대구, 울산, 부산, 광주 등 과거 지역법관(일명 향판)들이 많았던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 공직퇴임 변호사 82%, 서울 근무

지난해 공직퇴임 변호사는 모두 914명이었다. 이 가운데 82%인 750명이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전체 변호사 중 공직퇴임 변호사 비율은 4.7%였다. 반면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경우 평균 2.9%로 서울보다 낮았다.

공직퇴임 변호사들이 서울 지역에 몰리는 건 다른 지역 법원에 비해 서울 법원에 복잡하고 민감한 사건이 많기 때문이라고 법조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서울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는 지방변호사회가 있는 14개 지역 중 가장 많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 공판 사건 수는 서울의 경우 4만9403건으로 전국 24만여 건의 약 20%였다. A 변호사는 “대기업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에 수임료가 높은 사건이 많다. 또 비슷한 사건이라도 다른 지역보다 서울의 수임료가 높아서 전관들이 서울 개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주로 근무한 소위 ‘엘리트 전관 판사’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는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B 변호사는 “전관예우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많은 곳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직퇴임 변호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제주였다. 서울 4.7%의 2배가 넘는 10.7%였다. 그런데 제주의 공직퇴임 변호사는 판검사 경력이 없는 공무원 출신이 대부분이다. 제주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C 변호사는 “제주의 전관들은 노후를 편히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제주에 자리 잡은 뒤 사건을 거의 안 맡는다”고 했다.

○ 사건 쏠림 대구 1위, 울산 2위

법조윤리협의회는 사건 수임 건수가 전체 변호사 평균의 2.5배 이상인 변호사를 특정 변호사로 분류해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해당 자료를 별도로 제출받고 있다. 수임 과정에 전관 특혜나 브로커 동원 등의 불법 소지가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특정 변호사 비율은 서울보다 지방이 높았다. 지난해 서울의 경우 전체 변호사 중 특정 변호사 비율이 6.9%였는데, 다른 지역 평균은 11.8%였다. 특정 변호사 비율은 지방변호사회가 있는 14개 지역 가운데 대구(26.4%)가 가장 높았다. 이어 울산(24.2%), 부산(14.8%), 광주(11.9%), 그리고 의정부지법이 있는 경기북부(11.8%)의 순이었다. D 변호사는 “지방에선 변호사를 구할 때 입소문을 많이 타는 것 같다. 변호사 정보가 서울보다 적기 때문에 인맥을 동원해 변호사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판사가 한 지역에서 기한 없이 근무할 수 있었던 지역법관제도는 2014년 폐지됐지만 최장 7년 동안 같은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근무 판사와 특정 변호사 간 유착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E 변호사는 “어떤 변호사가 지역 장기 근무 판사와 친하다고 소문이 나면 아무래도 그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리게 된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선 과거 의정부, 대전 등에서 심각한 법조 비리 사건이 터졌던 점을 감안해 각 지역 특정 변호사 통계를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울산지검은 법조 비리 단속전담반을 출범시켜 6개월여 만에 변호사와 법무사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법조 브로커 10명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구속 기소된 법조 브로커 F 씨는 자신의 처남이 검찰 고위 간부인 것처럼 사건 의뢰인들을 속였다. 기소된 변호사, 브로커 등은 “어차피 돈 싸움”이라며 거액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에서도 2017년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 등 7명이 적발됐다. 이 중 일부는 사건 의뢰인에게 담당 재판부와 친하다고 거짓말을 한 뒤 보석 허가를 조건으로 사건을 수임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예지 yeji@donga.com·이호재 기자
#전관예우#공직퇴임 변호사#대한민국 전관예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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