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의 게임’ 뉴질랜드 테러와 디지털의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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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의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헬멧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테러범은 뉴질랜드 이슬람사원에서 벌인 처참한 총격 장면을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에 중계했다. 대자연의 신비와 평화가 숨 쉬는 살아있는 천국. 이민자의 천국으로 여겨지던 뉴질랜드조차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삶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후, 보다 민주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했다.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의 삶은 더 위태로운 모습으로 끈에 매달려 있는 처지가 됐다.

4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극장에서 100명 이상을 살해한 이슬람국가(IS) 테러범들은 미국 국가안보국(NSA)도 해킹이 어려운 슈어스폰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이 불가능한 다크웹으로 접선하고 지도부에서 명령을 하달 받았다. 그들은 신의 선물이었던 기술 도구들을 테러에 활용했다. 이번 뉴질랜드 테러범은 트위터와 온라인, 페이스북 등에 ‘반(反)이민 선언문’을 올리고 자신의 테러를 정당화하려 했다.

17분간의 살육 현장. 보통의 사람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 장면을 봤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편리하고 놀라운 기술의 도구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부정적 도구로 이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기술을 이용한 테러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벌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서로 더 연결되고 의존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투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지만 특정한 소수는 사회를 점점 불투명하게 만들고 이 기술로 권력을 장악해가고 있다. 매일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도구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시스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 누군가가 이 시스템에 침투해 조작할 수도 있고 왜곡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중재하는 삶을 살고, 대형 포털이 공급하는 5개의 메인 뉴스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혼탁하게 한 것을 반성한다며 새로운 뉴스 제공방식을 제안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뉴스 알고리즘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는 모른다. 포털 시스템은 인간의 손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단적인 예로, 그것은 해킹이 될 수도 있고 컴퓨터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손이 개입하는 경우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첫 화면에서 마주하는 뉴스, 맛집 정보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실시간 검색어는 대중의 관심을 조작할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들의 인식 범위를 결정하기도 하고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포털이나 실시간 검색어는 책이나 영화, 병원, 학교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기술들이 가끔은 잘못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거대한 사회적 변화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실제적인 동력은 기술이다.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진 정부나 테러리스트, 사적 이익을 위해 여론을 왜곡시키는 특정 세력이 개입해 기술을 작동시키고 운영하고 통제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파괴적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실시간으로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최희원 한국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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