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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헬스장에서 쓰는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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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헬스장에서 쓰는 마약”

박세준 기자 입력 2019-02-23 20:18수정 2019-02-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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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한 보디빌더의 고백으로 보디빌딩 판 ‘약투’가 시작됐다. ‘약투’란 성범죄 피해 사실을 용기 내 폭로한 ‘미투운동’에서 따와 약물의 힘을 빌려 몸을 만들었다고 고백하는 일을 말한다.

보디빌딩 선수이자 구독자 10만 명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박승현(28) 씨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계정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을 고민하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을 ‘약쟁이’ ‘로이더’로 소개하며 스테로이드로 몸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로이더’란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몸을 키운 사람을 뜻하는 은어이며,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는 사람은 ‘내추럴’이라고 부른다. 그가 자신의 치부를 공개한 것은 스테로이드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는 피부를 덮은 여드름은 물론, 달처럼 부은 얼굴도 부작용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다른 보디빌더와 트레이너의 ‘약투’가 이어졌다. 일부 비양심적인 체육관에서는 일반인에게도 약물 사용을 제안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마약만큼 몸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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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빌더 박승현의 ‘약투’ 영상(오른쪽)과 피트니스 모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이나현의 ‘약투’ 영상. [유튜브 캡처]
박씨 등 보디빌더들이 사용했다고 고백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근육 생성을 돕는 약물로 알려져 있다. 아나볼릭(Anabolic)은 ‘단백동화(同化)’라는 의미로, 신체에 단백질이 충분할 때 근육이 생성되거나 커지는 상태를 말한다.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이다. 일반적으로는 뇌하수체 시상하부에서 이를 조절해 적절한 분비량을 유지하지만, 약물을 통해 체내 분비량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 동화작용이 잘 일어나는 만큼 근력이 커지고, 근육 회복도 빨라진다. 4년 차 트레이너 이모(30) 씨는 “근육을 키운다는 것은 근육 손상과 회복의 반복이다. 약물을 사용하면 더 높은 강도로 운동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근육 회복도 빨라져 근육 성장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흔히 알려진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여드름 발생과 성기능 퇴화다. 남성호르몬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니 여드름 등 2차 성징 때나 보이던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부작용은 성기능 퇴화다. 남성호르몬이 많으면 오히려 성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 모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스테로이드를 맞으면 체내에 남성호르몬이 많아 고환이 해당 기능을 하지 않는다.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당연히 퇴화되기 마련이라 일을 덜 하는 고환은 작아지고 체내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능이 떨어져 외려 성기능 장애와 여유증(여자처럼 가슴이 커지는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기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남성화가 진행됐다는 여성 사례도 있다. 약투에 동참한 첫 여성 피트니스 모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이나현 씨(BJ나현)는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여성 중에는 수염이 나거나, 팔·다리털이 많아지는 등 전체적으로 남성처럼 몸이 변한 경우가 있다.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도 남자처럼 굵어진다.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피부 상태도 나빠진다. 나 역시 아름다운 몸을 만들려고 운동하는 건데 외모가 점점 이상해지자 외출이 두려울 지경이었다”고 밝혔다.

남녀 모두 겪는 부작용으로는 심폐 능력 감소가 있다. 이는 스테로이드로 장기가 커져 생기는 증상이다. 임 교수는 “근육이 커지니 근육으로 이뤄진 심장 일부도 커진다. 심장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는데 심장이 커지니 오히려 심장 움직임이 제약을 받는다. 또 장기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기능이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스테로이드의 효과와 부작용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피부과 등에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나도 같은 부작용을 겪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근육을 키우려고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와 피부과에서 쓰는 스테로이드는 이름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약품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스테로이드란 특정한 화학구조를 가진 화합물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피부과에서 처방하는 스테로이드는 ‘코르티솔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인공적으로 체내 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키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약투’를 한 보디빌더들은 약물 복용 시 부작용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보디빌딩, 피트니스 대회에 도전하는 준비생들에게 약물을 추천한다는 것. 보디빌더가 꿈인 대학생 박모(27) 씨도 얼마 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매일 2~3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했다. 대학생 때부터는 주위 친구들의 운동을 하나 둘 도와주면서 일반 회사 취업보다 트레이너나 보디빌더를 목표로 세웠다. 대회 입상 경력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몸을 만들던 중 친한 트레이너가 약물을 권했다. 당장 대회가 코앞이니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써보자는 것. 그는 “한 번 사용한다고 몸이 크게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효과는 확실하다는 말에 혹했다. 하지만 운동선수도 사용만으로 처벌받는 약물이라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스테로이드는 한번 사용하면 쉽게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지닌다. 이나현 씨는 “일정 기간 약물(스테로이드)을 사용하다 일시에 끊으면 몸이 눈에 띄게 작아진다. 이 잠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약을 찾는 사람이 종종 있다. 게다가 약을 사용했을 때 운동 능력을 본인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문제다. 약의 힘을 빌려 더 큰 운동량을 버티고 회복도 빨랐던 것이라 약을 끊으면 원상 복귀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약을 쓰지 않아 운동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약처럼 정말 약을 끊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 나쁜 약을 왜 못 끊나

‘약투’에 동참한 보디빌더 김동현의 모습. 약물을 사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크다. [유튜브 캡처]
의료계에 따르면 본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연명 치료나 호르몬 장애 등 특수한 상황에만 쓰는 약이다. 전문의약품이라 의사의 처방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 임 교수는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단순히 몸을 가꾸고 싶은 사람을 부추겨 약물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둬서는 안 된다. 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려 약을 끊어도 장기간 부작용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3개월 동안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사람은 중단하면 몸이 곧 정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6개월 넘게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번에 약을 끊으면 오히려 호르몬 불균형이 올 수 있다. 장기간 치료를 통해 천천히 약을 끊어야 하고, 그만큼 부작용 지속 기간도 길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약투, 폭로전으로 번져도 피해자 막아야

‘약투’를 이어가고 있는 트레이너 김동현 씨는 2월 1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직업 보디빌더의 90%가 브로커를 통한 불법약물 복용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테로이드나 인슐린, 성장호르몬 등을 혼용해 근육을 키우고 하루에 18~20개의 주사제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그가 보디빌딩업계를 매도했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로이더)는 소수다. 대부분 수도승 같은 삶을 견디며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폭로로 무고하게 다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폭로자들을 대상으로 위력을 행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해당 방송에서 “‘약투’ 후 일하던 체육관에서 해고되고 업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약투’에 나섰던 한 트레이너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만나서 대화 좀 해보자’는 얘기부터 ‘이 업계에 발 못 붙일 줄 알라’는 협박까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문자메시지가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폭로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부작용이 알려져 수요가 줄어들자 브로커도 많이 사라졌기 때문. 3년 차 트레이너 정모(28) 씨는 “과거에는 대회를 준비한다는 사람에게 약물을 대놓고 권하는 브로커나 트레이너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알려지고 나서는 이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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