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북한 인권?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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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해 북한은 장애인 인권을 다루는 유엔 특별보고관의 방북을 처음으로 허용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작년 5월 데반다스 아길라 유엔 장애인 인권 특별보고관이 북한을 방문해 기초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이후에도 아동권리협약 이행 보고서 등을 제출하며 표면적으로라도 사회적 취약 계층의 인권 개선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올해 6월 19일 유엔인권이사회의 반이스라엘 성향과 인권탄압국 이사국 허용 등을 이유로 기구 탈퇴를 결정했습니다. 미국의 유엔인권이사회 탈퇴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있어 어떤 영향을 줄지, 앞으로 국제사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A. 유엔 인권이사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제3위원회를 통해 북한인권결의안을 컨센서스(표결 없이 통과) 형태로 채택했습니다. 14년 연속입니다. 결의안에는 심각한 북한 인권실태와 함께 ‘가장 책임 있는 자를 제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한 거죠. 북한이 결의안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유엔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주도국들과 당사국인 북한이 서로의 주장을 하는 회의를 녹화본으로 모두 보았습니다. 북한 인권에 가장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주도해 온 곳이 바로 EU입니다. 올해 결의안 역시 EU와 일본이 주도했죠. 당일 EU 대표로 발언을 한 오스트리아 대표는 “결의안이 나오고도 북한의 실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당연히 반발했고 “음해 세력들의 공화국 모독”이라며 회의가 끝나기도 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자신들의 인권 문제가 외부에서 논의되는 것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치장을 합니다. 북한을 찾는 외국인들은 평양의 학교를 방문해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구호 아래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관람해야 합니다. 지난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다녀온 김정숙 여사 또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찾아 북한 내 최고 교육을 받는 평양 어린이들을 둘러봤습니다. 아마 겉으로 보기엔 인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중앙TV에서는 주기적으로 장애인 인권과 아동인권, 노인과 여성의 인권을 위한 자국의 노력을 홍보하는 프로그램물을 만들어 방영합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중년의 시각 장애인 남성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며 이렇게 말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모든 건 최고지도자께서 은덕을 베푸신 덕입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의 인권실태는 세계 최악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정치범수용소’가 연상됩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치범수용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감옥이 아닙니다. 수용범들이 살아가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주일에 2, 3명이 죽어 나가는, 말 그대로 ‘지옥’입니다. 방치된 시체를 쥐들이 파먹어, 수용소에 사는 쥐들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죠. 이곳은 체제에 반한, 말 그대로 ‘정치범’들을 수용합니다. 북한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우리의 교도소와 같은 곳이 있는데, ‘노동교화소’라 불립니다. 교화소 역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곳이지만, 수용소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체제를 비판하고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것이 북한에선 더 큰 죄인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권인 거주의 자유, 직업의 자유도 북한에선 허용되지 않습니다. 당에서 정해주는 직업으로 평생 당에서 정해준 지역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최근 주로 보는 평양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북한의 ‘선택받은 주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유엔 인권이사회를 탈퇴하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크게 보면 ‘미국 우선주의’ 기치 하에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과거 스스로 만든 유엔이나 다자기구, 다자 협약에서 기꺼이 탈퇴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의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미국의 인권이사회에 대한 불만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인권이사회 회원국은 47개국. 이 중에는 리비아, 이라크와 같은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워낙 다양하고 많은 국가가 개입되어 있다보니,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비민주적 국가들의 의견이 주도적으로 흐름을 이끄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미국의 불만이었습니다. 소수의 인권보장국가에 의한 결정이 아닌, 비민주주의국가들이 개입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특히 최근 중국, 이라크와 같은 국가들에 의해 미국의 우방국인 이스라엘에 대한 인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은 결국 탈퇴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입니다. 올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현장에서 그것을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기자들은 기자회견 초반부터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냈습니다. 한국 언론보다도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말이죠. 그때 저는 ‘아! 미국이 인권 이슈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라고 거듭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장 미국 재무부는 11일 새벽(현지 시간 10일 오후) 북한의 2인자인 최룡해 부위원장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그가 체제 차원의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의 유엔 인권이사회 탈퇴가 미국의 북한 인권에 대한 활동과 관심에 어느 정도 부정적일 순 있지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현재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비핵화는 비핵화대로, 북한 인권문제는 인권문제 대로 따로 얘기하겠다는 것이죠. 현재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한 의제이기에, 미국도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비핵화를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찌 보면 전략적 선택에 따른 집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어제는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 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은 우리 민족 모두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인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단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현 정부는 인권문제에 있어서 남한과 북한을 철저히 구분하면서 북한 인권은 비핵화와 함께 경제사정이 나아지면 자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북한과 대화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북한 정권이 듣기 싫어하는 주민 인권문제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 문제가 남북대화라는 정치적 필요에 가려지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강은아 채널A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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