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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석탑 ‘1400년 판도라의 상자’ 열리던 그날 [김상운 기자의 발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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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석탑 ‘1400년 판도라의 상자’ 열리던 그날 [김상운 기자의 발굴왕]

김상운 기자 입력 2019-11-28 13:42수정 2019-11-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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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기자가 진행하는 대한민국 최초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에서 흥미로운 고고학 이야기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fJ49rzfJg

미륵사지 서석탑 사리공에서 금동 사리호를 꺼내고 있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1370년 만에 드러난 보물들

2009년 1월 14일 오전 미륵사지 서쪽 석탑 해체보수 현장. 두 번째 심주석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린 순간 배병선 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은 저절로 ‘동작 그만’이 됐습니다. 살짝 벌어진 심주석 틈 사이로 1370년 동안 갇혀 있던 사리장엄구가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 심주석 윗면에는 먹으로 十자를 그린 선이 선명했고 테두리에서는 석회를 발라 밀봉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통상 심주석 아래 심초석(心礎石)에 들어 있는 사리장엄구가 심주석 윗면에서 발견된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죠.


배 소장은 유물을 촬영한 사진을 들고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허겁지겁 올라갔습니다. 그날 열린 간부회의에서 미륵사지 유물의 가치와 복합 문화재(공예품이자 매장문화재)로서 성격을 감안해 연구소 내 건축실과 고고실, 미술실, 보존실이 총 망라된 유물수습팀이 즉시 구성됐습니다. 이에 따라 최맹식 당시 고고연구실장(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과 이난영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전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이규식 보존과학연구실장(현 복원기술연구실장) 등 전문가 29명이 당일 오후 1시쯤 현장에 급파됐습니다. 현장 책임자는 고(古)건축을 전공한 배 소장이었지만, 유물 수습은 보존실 소속 함철희 연구원이 맡았습니다. 유물 수습은 보존처리와 직결된 전문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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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3시 고유제를 치른 뒤 5시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가로 25㎝, 세로 25㎝, 깊이 26.5㎝의 구멍(사리공)에는 금동으로 만든 사리호가 온갖 구슬들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지금껏 발굴된 백제 금속유물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수습팀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유물을 꺼내는 순서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리공에는 사리호, 금으로 만든 사리봉영기, 은으로 만든 관식(冠飾), 청동합(靑銅盒), 금 구슬, 유리구슬, 유리판 등 9900여 점에 달하는 유물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백제시대 당시 유물들을 사리공 안에 봉안한 순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봉안된 순서 자체가 귀중한 학술자료인데다 이 순서와 정확히 반대로 유물을 하나씩 꺼내야 손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워낙 좁은 공간에 유물들이 밀집해 있다보니 굴절 거울을 동원해도 봉안된 순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리공의 3분의 2를 채운 구슬들 때문에 시야확보가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유물 배치도를 그리기가 힘들 정도로 구슬 숫자가 많아 이례적으로 3D 스캐닝을 동원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리장엄구의 핵심인 사리호와 사리봉영기 중 무엇을 먼저 꺼낼지를 놓고 수습팀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배 소장은 고민 끝에 사리호부터 꺼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본격적인 유물 수습에 착수한 건 조사가 진행된 지 2시간이 지난 오후 7시쯤이었습니다. 다음은 배 소장의 회고. “사리봉영기가 사리공 벽면에 걸쳐 있어서 밑이 살짝 뜬 상태였어요. 금판에 새긴 글자 위에 주칠(朱漆·붉은색 옻칠)이 떨어져 나갈까 봐 몹시 조심스러웠습니다. 사리호랑 직접 붙어 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지름 1㎜의 미세한 금 구슬을 꺼낼 땐 땅에 떨어뜨릴 것을 우려해 핀셋 대신 양면 접착테이프를 붙인 막대기로 건져 올렸습니다. 사리호와 함께 봉안된 각종 섬유류는 대나무 칼로 조심스럽게 떼어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현장회의, 촬영, 실측, 수습 순으로 진행되다보니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외부 공기에 이미 노출된 유물들의 손상을 최소화하려면 신속한 수습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수습팀은 이틀에 걸쳐 밤을 꼬박 새우며 강행군을 이어갔습니다. 사리장엄구 발견부터 수습 완료까지 사흘 동안 배 소장은 현장에 차린 간이침대에서 6시간만 자고 버텼습니다.



16일 유물 수습을 모두 마친 뒤 19일 현장에서 언론 공개회가 열렸습니다. 다음날 오전 유물들을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용기에 종류별로 보관한 뒤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송했습니다. 특히 사리호와 사리봉영기는 솜이 담긴 오동나무 용기에 별도로 넣어 옮겼습니다. 사리호는 조사결과 총 3중의 구조였습니다. 마치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금동으로 만든 사리호 안에 금 사리호가, 그 안에 다시 유리 사리호가 들어있었습니다. 세 종류의 사리호가 사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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