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탄생 300년… 사회 갈등 해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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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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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한국외대 교수 - 이용철 방송통신대 교수 대담
경쟁사회가 타락 부추겨… ‘자연으로 돌아가’ 선함 되찾을 때

《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교육이론가, 문학가, 음악가였던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탄생한 지 올해로 300년이 된다. 사후에 ‘프랑스혁명의 아버지’ ‘근대 최고의 독창적 천재’ 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온 그의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루소 탄생 300주년을 맞아 학교 폭력, 자본주의의 위기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루소의 사상에서 찾아본다. 루소를 전공한 김용민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6)와 이용철 한국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 교수(51)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에서 대담을 나눴다. 》
루소 탄생 300주년을 맞아 대담을 한 김용민 교수(왼쪽)와 이용철 교수는 “인간 본성을 논할 때 루소를 빼놓을 수 없다”며 “인간 본성론을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고 정치 사회 교육 등을 설계할 수 있는 만큼 루소는 현대에도 유효한 인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루소 탄생 300주년을 맞아 대담을 한 김용민 교수(왼쪽)와 이용철 교수는 “인간 본성을 논할 때 루소를 빼놓을 수 없다”며 “인간 본성론을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알고 정치 사회 교육 등을 설계할 수 있는 만큼 루소는 현대에도 유효한 인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루소 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이 떠오릅니다.

▽이용철=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직접 한 적은 없어요. 다만 루소 철학의 전반을 꿰뚫는 메시지를 그 한마디로 집약할 수 있죠.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선량하게 태어났지만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봤습니다.

▽김용민=사회에서 불행해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외친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지녔던 선함을 현 사회에서 복구하자는 뜻이지요.

―극심한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개선할 조언을 루소의 사상에서 찾는다면….

▽김=루소는 자본주의가 막 싹트던 시대에 이미 그 부작용을 예감했어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이 불평등해진 계기를 재산 관념의 형성에서 찾았지요. 사유재산제도가 불평등을 초래하긴 하지만 잉여가치를 산출해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장점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유재산제의 철폐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와는 구별됩니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빈부격차 문제의 처방을 제시했는데 일반의지(공공선을 지향하는 주권자의 의지)에 따라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사유재산제를 일부 규제하자는 것이지요.

▽이=루소는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 초래하는 인간소외에 주목했습니다. 경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보진 않았어요. 다만 인간의 독립성과 자유를 잃을 정도로 과도하게 경쟁하거나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를 넘어 지나치게 부를 창출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을 사회의 근본 원칙으로 봤어요.

―올해 대선이 있습니다. 루소가 말한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무엇인가요.

▽김=루소는 정치가(행정가)에게서 세 가지 의지를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적 의지, 자기가 속한 정치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지, 인민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의지가 그것입니다. 루소는 바람직한 정치가에겐 일반의지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 집단의지와 개인적 의지가 와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 ‘고소영’ ‘강부자’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정치인들이 공동선보다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 앞세웠다는 방증이죠.

▽이=루소는 영국의 의원 선거를 보며 “영국 국민들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의지란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직접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봤습니다.

―루소가 소설 형식을 빌려 쓴 교육사상서 ‘에밀’에서 최근 학교 폭력 문제의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이=학교 폭력은 사회의 문제입니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스스로 패배자라고 여기는 학생들이 그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것이죠. 동료 학생들의 노스페이스 점퍼를 빼앗는 것은 옷을 통해서라도 열등감을 숨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죠. ‘에밀’에서 가장 혁신적인 관점은 어린이를 미완성의 어른이 아닌 그들 나름의 고유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즉 학생들은 존중을 받고 그 나이에 맞는 행복을 향유할 권리가 있어요. 우리 교육은 현재의 행복을 미루고 나중에 좋은 대학 가서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죠.

▽김=학교 폭력은 근본적으로 가정교육에서 비롯됩니다. 부모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외롭게 학원을 돌거나 게임에 빠집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못 배운 사랑을 가정 밖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부모들은 한번쯤 ‘에밀’을 읽어볼 필요가 있어요.

―루소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인재였습니다만….

▽이=흥미로운 점은 그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 외엔 거의 독학을 했어요. 16세에 조각공의 도제생활을 때려치우고 고향을 떠나 20년간 별 직업 없이 후원자인 바랑 부인에게 기대어 빈둥거렸죠. 37세에 비로소 ‘학문예술론’을 써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죠. 그는 ‘백수 생활’을 통해 편견 없이 세상을 통찰하는 눈, 독창적 사고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루소는 독특한 경험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고 독학을 통해 사상의 보고를 마련했어요. 그는 ‘고백록’에서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따라하는 훈련을 한 뒤에야 스스로 독창적 판단력을 갖게 됐다고 썼어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다며 앵무새처럼 대충 남의 생각을 따라가서는 창조적 사고가 나올 수 없습니다.

루소를 한층 깊이 알고 싶은 초보자는 김 교수의 저서 ‘루소의 정치철학’(2004년·인간사랑)과 이 교수의 저서 ‘루소: 분열된 영혼’(2006년·태학사)을 읽어볼 만하다. 루소의 저작 가운데 김 교수는 뛰어난 통찰력을 담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이 교수는 인간 영혼의 스펙트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백록’을 추천했다.

정리=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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