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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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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

동아일보입력 2010-11-30 03:00수정 2010-11-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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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 ‘김종욱 찾기’ 가슴 뭉클한 명대사 모음
“하긴, 내가 좀 현실성이 떨어지죠.” “그래도,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김종욱 찾기’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신선함과 거리가 멀다. 원작 뮤지컬에서 걷어낸 노래와 춤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사랑 경험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쉽게 감정이입할 만한 대사의 쫄깃한 매력이다.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맨 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

9일 개봉하는 ‘김종욱 찾기’(12세 관람가)의 이야기가 보는 이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순간은 후반부 이 대사에서다. 첫사랑과 재회하러 떠난 지우(임수정)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 기준(공유)에게 매형이 칠판에 적어 들이미는 깨우침. 용수철 튕기듯 달려 나가는 기준의 모습은 이 대사 덕분에 어색하지 않다.》
로맨스 영화의 절반은 ‘대사발’이다. 9년 전 ‘봄날은 간다’의 배경이 강릉이었는지 춘천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는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2006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한 뒤 장기 흥행 중인 창작뮤지컬을 각색한 ‘김종욱 찾기’의 미덕 역시 마찬가지다. 10년 전 인도 배낭여행 중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여자와 ‘첫사랑 찾아주기’ 사업을 차린 어수룩한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아옹다옹 로맨스. 노래를 지우고 배경을 확장했지만 너무 ‘뽀샤시’한 영상과 순진무구한 캐릭터, 과장된 동작과 억양은 뮤지컬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중반의 나른한 전개는 명절마다 TV에서 반복하는 식상한 내용의 특집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명백한 단점을 잊게 만드는 것은 군데군데 숨겨둔 반짝반짝한 대사들이다.

하지만 그 언어에 이입해 감흥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부가 요소는 그리 풍성하지 않다. 악센트를 뚜렷이 두지 않은 까닭에 무심히 듣고 흘려보내기 쉽다. 24일 시사회에 동행한 30대 여성 관객은 “첫사랑 경험의 깊이와 강도에 따라 감정이입이 크게 달라질 영화”라고 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대화를 붙들어줄 문학적 확장의 실마리를 소개한다. 기준을 깨우쳐준 매형의 대사는 시인 백창일이 1999년 발표한 ‘배추흰나비’의 마지막 구절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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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흰나비보다 눈이 깊은 사람아/모든 사랑은 다 첫사랑이다.”>

① “안녕? 안녕. 안녕…”

10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과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할까. 지우는 천신만고 끝에 마주한 첫사랑 김종욱에게 간결한 인사 세 마디만을 다른 뉘앙스로 건넨 뒤 작별을 고한다. 내내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떨어져 살아온 시간 동안 각자 다르게 쌓은 추억을 다시 맞대어 이을 수 없음을 알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재회를 원한 것은 적절한 클로저(closure)를 통해 마음을 다독인 뒤 새로운 인연을 밝은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어서였다. 그들이 찾아 나설 두 번째 사랑의 행복은 첫 경험 없이는 알 수 없는 가치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1860년) 중에 비슷한 작별인사가 나온다.

<“안녕. 안녕. 안녕.”

나는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나도 떠났다. 내가 떠날 때 가졌던 감정을 지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감정이 되풀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할 수 없었다면, 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② “보고 싶었어요. 아니…, 보고 싶었대요”

김종욱을 찾아낸 기준은 ‘고객’인 지우에게 이미 마음을 뺏긴 상태다. 오랜만에 만나 엉겁결에 튀어나온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어색한 얼굴로 “첫사랑이 당신을 찾아왔다”고 시무룩하게 알린다. 기준이 김종욱의 실체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된 것은 지우의 아버지가 몰래 건네준 비밀일기장이다.

이승우는 1993년 발표한 소설 ‘생의 이면’에서 “하나의 방향을 잡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해 나갔”던 첫사랑의 열정이 담긴 일기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썼다.

<밤마다 꿈을 꾸었고, 깨어나면 편지를 썼다. 나름대로 간절한 심정이 설익은 채 옮겨진 그 글들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편지들은 내 일기장 속에 묵혀 있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③ “아니. 끝까지 사랑하지 못했던 거예요”

함께 떠난 여행에서 우연한 사고로 밤을 지새우게 되면서 기준과 지우는 서로에 대해 숨겨둔 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지극히 뻔한 상황이지만 대사의 매력 덕에 관객의 닭살을 돋게 할 위기를 넘긴다. 기준이 들려준 첫사랑과의 이별 이야기에 지우는 “괜찮아요. 인연이 아니었던 것뿐이에요”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기준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스스로를 솔직하게 탓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년)의 주인공은 첫사랑이 “자신을 버린 51년 9개월 하고도 4일 전부터” 한순간도 그녀를 잊지 못한 인물이다. “단 하루도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끝까지 끔찍하게 관철한 인물이라 할 만하다.

<“언제까지 이 (사랑의)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생이 다할 때까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영화 ‘김종욱 찾기’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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