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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Wisdom]구한말 한반도를 바라본 해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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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Wisdom]구한말 한반도를 바라본 해외의 시선

동아일보입력 2011-06-18 03:00수정 2011-08-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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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식자층, 조선인 찬양론자 많았다
구한말의 모습들. 왼쪽부터 1900년 전후의 서대문, 소반(小盤) 제조하는 모습, 문선공(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는 사람). 동아일보DB
구한말 우리 조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서구의 시선이 있었다. 이를 알아보는 일은 우리의 자화상에 드리웠던 그늘을 걷어내는 일이다. 또 유럽을 매혹시킨 슈퍼주니어처럼 유쾌한 자신감을 갖는 일의 시작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오늘날 한국이 이뤄낸 경제성장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휩쓰는 ‘한류열풍’에 놀라는 쪽은 세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다. 우리는 어리둥절하다. 어디서 이런 ‘매력’이 생겼을까.

우리가 열강의 뒷발에 차이던 구한말에 이미 한국인의 매력도는 충분히 높았고 많은 서구인이 이를 알아봤다는 증거가 기록 곳곳에 남아 있다. 구한말 한국은 경쟁력이 없었다는 주장은 일본이 만들어낸 말일 뿐이다. 조선을 직접 경험했느냐, 남의 말만 듣고 판단했느냐에 따라 조선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 “조센진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부정적 의견은 대충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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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은 게으르고 겁이 많다.’

‘느려 터지고 잠이 가득한 눈매를 가졌다.’

‘스스로 통제하는 자질이 없다.’

그랬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잠갔던 문을 열자마자 밀려드는 서구문명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더욱이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식민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세계열강, 특히 일본은 조선을 식민화하기 위해 조선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일본은 “조선인은 열등 민족이어서 자치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선전했으며 세계는 일본의 말을 믿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 캐넌은 ‘나태한 나라 조선’(1905년)에서 조선인을 ‘몸도 옷도 불결하고 아둔하며, 매우 무식하고 선천적으로 게으른’이라고 표현했다. 캐넌의 친구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악평에 영향받아 ‘조선은 자치가 부적절하다’고 확신했다. 세계열강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쑥덕인 끝에 조선인을 ‘자치가 부적절한 민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조선 찬양론자들의 출현

‘조선’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지자 조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들과 긴밀히 교류했던 외국인들 중에는 조선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영국 기자 프레드릭 매킨지는 “조선인들은 친절하고 정직하며 사랑받아야 할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조선인을 ‘열등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은 과대평가하는 반면 조선인은 과소평가했다”며 “조선보다 더 열등한 민족이 4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을 동화시키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도 조선의 청년 여행가이드와 우정을 나누며 조선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당초 일본의 주장에 따라 조선이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믿었던 그는 조선을 둘러보고 나서 “조선인들은 머리가 명석하다. 이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면 독창적 탐구심으로 불타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2년간 도쿄에 머물다 조선의 미국 공사관으로 부임한 윌리엄 샌즈는 일본과 조선에 대해 통달한 인물이었다. 다음은 그가 조선을 분석한 내용이다.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질서 있는 국민이기는 하나 다른 사람을 기죽이는 습관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매섭고 빠르게 주먹질하며 분개하는 사람들이다.

조선인보다 더 다스리기 쉬운 백성은 없다. 이들은 절망적으로 학대받지 않는 한 늘 평화롭다. 비겁하다는 말도 옳지 않다. 1866년과 1871년 프랑스와 미국이 침입했을 때 수병들에 항거한 사람들은 ‘호랑이를 때려잡는’ 조선인들이었고, 훌륭한 자질을 가진 농민들이었다. 일관되고 정직한 통치만 이루어졌다면 조선 사람들은 훌륭한 민족으로 육성되었을 것이다.”

○ 꽉 막힌 사람들의 변치 않는 ‘조선 폄훼’

이렇듯 조선인들을 섬세하게 관찰했던 서구인들은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이 보고 느낀 대로 썼다. 그러나 조선의 겉만 핥고 돌아간 서구인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틀에 박힌 인상을 가졌다.

영국의 정치인 조지 커즌이 본 조선인은 이렇다.

“일본 봉건제의 남성적 기개가 부족하고 무기력하며 고집불통이다. 일본인에 비해 크고 건장하며 잘생겼으나 무관심하고 유약하다.”

조선인이 ‘나태하고 무기력하다’는 인식은 그로부터 30여 년 후 영국인 소설가 헨리 드레이크의 글에서도 보인다. 영제국주의의 우월감과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두 사람은 조선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조선인은 개선의 여지가 없으므로 우등한 종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으나 조선을 알게 되면서 의견을 바꾼 경우도 많다.

러시아 치하의 폴란드 민속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조선을 처음 둘러본 뒤 ‘전근대적 조선’을 한탄하고 일본의 근대성을 예찬했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과 교류하면서부터 그는 차츰 ‘문명과 독립의 딜레마’에 빠진 조선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치하의 식민지인기도 했던 그는 조선인과 상호교류가 깊어질수록 조선의 비극을 인식하고 자신이 처한 식민적 정체성을 고민했다.

○ 파리의 슈퍼 주니어, 역사에 드리운 그늘을 걷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였던 국기에 대한 맹세도 ‘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바뀐 요즘이다. ‘민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의식을 품어야 하는 시대에 민족 운운하는 게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인은 조상이기 이전에 ‘역사의 약자’였다. 조선인들의 긍정적 매력을 조명하는 것은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역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자화상에 드리워있던 그늘을 걷어 정체성에 유쾌한 자신감을 갖고 싶은 것이다. ‘슈퍼 주니어’의 매력에 빠진 유럽인을 보며 느끼는 그런 자신감 말이다.

박수영 건국대 강사·소설가 feenpark@paran.com


박수영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대에서 철학을,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199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고, 장편소설 ‘매혹’(2001)과 ‘도취’(2003)를 출간했다. 스웨덴 유학시절의 체류기인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2009)은 북유럽 사회에 대한 격조 높은 탐구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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