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TGiF’에 빠진 뇌, 사유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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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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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최지향 옮김 364쪽·1만5000원·청림출판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정보사회의 대들보인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표적 논객으로 재런 래니어와 니콜라스 카가 손꼽힌다. 둘 다 세계적 정보기술 이론가여서 그 메아리가 더 크게 울린다.

1989년 29세에 가상현실(VR)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된 래니어는 고교를 중퇴한 뒤 컴퓨터에 미친 괴짜다. 2000년 ‘와이어드’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래니어는 컴퓨터 기술을 무조건 신뢰하는 풍조를 ‘사이버네틱 전체주의(cybernetic totalism)’로 명명하고 이로부터 비롯된 이데올로기가 인류를 불행으로 몰아넣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2006년 래니어는 웹진 ‘에지’ 5월 30일자에 ‘디지털 마오쩌둥주의(digital Maoism)’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부제는 ‘새로운 온라인 집산주의(online collectivism)의 위험 요소’이다.

사이버네틱 전체주의를 디지털 마오쩌둥주의라고 새롭게 명명한 래니어는 인터넷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월드와이드웹, 곧 웹 2.0의 부정적 측면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를테면 누리꾼이 익명으로 참여하는 온라인 협동 작업은 개인의 창의성이 거의 무시되므로 누리꾼의 군중심리만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2010년 1월 펴낸 ‘당신은 부속품이 아니다(You Are Not a Gadget)’에서 래니어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집단으로 마녀사냥을 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그 예로 한국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을 들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개인의 지적재산권이 존중될 때 비로소 누구나 부속품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림출판 제공
청림출판 제공
래니어와 달리 하버드대 대학원을 나온 카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기업 경영에 관한 강연을 펼쳐 세계적 경영컨설턴트 반열에 오른 정보기술 이론가이다. 2008년 격월간 ‘애틀랜틱’ 7·8월호에 ‘구글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드는가?’라는 장문의 에세이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으며 그 내용을 고스란히 되살려 2010년 6월 책으로 엮어냈다. 바로 이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The Shallows’)’이다. ‘인터넷이 우리 뇌에게 한 것’이라는 부제에 집약되듯이 이 책은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경고한다.

카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도 e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한탄한다. 인터넷이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감에 따라 ‘예전처럼 독서에 집중하던 행위는 어느새 투쟁이 되어 버렸고’,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걱정하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사용자를 멍청이로 만드는 장본인은 누구인가. 카는 서슴없이 구글이라고 지목하고 ‘이 회사가 가장 원치 않는 것은 여유로운 독서나 깊은 생각을 독려하는 것이다. 구글은 말 그대로 산만함을 업으로 삼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며 맹공을 퍼붓는다.


책에서 카는 가령 ‘구글의 검색 엔진이 누리꾼의 뇌를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것 같다.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미주알고주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 신경과학자 게리 스몰의 실험 결과가 여기 빠질 리 없다. 스몰은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디지털 기술이 뇌의 신경회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장치로 뇌를 들여다본 결과 구글 검색이 특정 신경회로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2008년 10월 펴낸 ‘디지털 시대의 뇌(원제 ‘iBrain’)’에서 스몰은 인터넷이 누리꾼의 뇌에 작용해 ‘지속적 부분 주의(continuous partial attention)’ 상태로 몰아넣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면서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 상태를 뜻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휴대전화로 친구와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한꺼번에 여러 일을 건성으로 처리하는 사람은 지속적 부분 주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스몰의 연구는 카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독서를 대중적인 활동으로 만든 지난 다섯 세기 동안 예술, 과학, 사회의 중심에 있던 유연한 방식의 사고는 ‘르네상스를 불러온 상상력이었고 계몽주의를 낳은 이성적 사고였으며 산업혁명을 이끈 창조적인 사고’였다고 회고하면서 인터넷 기술 때문에 ‘이 역시 곧 구식이 될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털어 놓는다. 책의 말미에서도 그는 “인터넷 사용으로 생물학적인 기억 장치에 정보를 저장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피상적으로 사고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광활하고, 쉽게 검색 가능한 인공지능에 더더욱 의존하게 된다”고 적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이 피살되는 장면을 그가 책 도입부에 소개한 까닭을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의 책 읽는 재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할과 구글이 왜 함께 언급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할 수밖에 없겠다.

어쨌거나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드는 것 같지만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책의 끝부분을 뒤적여 보아도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카의 생각에 공감한다면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스마트폰을 ‘적당히’ 사용하는 수밖에.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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