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문학을 만난 노숙인들, 그들의 달라진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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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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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인문학/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엮음/476쪽·1만8000원·삼인

“성프란시스대학은 적어도 자살을 두어 번 시도해 본 사람만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입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는 노숙인들이 공부하는 성프란시스대학이 있다. 12세기 이탈리아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노숙인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프란시스(프란체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 설립한 학교다. 1년 과정으로 노숙인들에게 글쓰기 문학 한국사 예술사 등 인문학 과목을 가르친다. 2005년 9월 첫 수강생을 모집해 올해는 8기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교육에서 소외됐던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성프란시스대학 교수, 수강생,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로 엮었다.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강의해야 하는 교수들에겐 교재를 선정하는 일부터 곤욕이었다. 알코올의존증, 가정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방황으로 허물어진 노숙인들에게 사회구조에 관한 진지한 이론이나 노동자계급의 역사의식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빈민에게 빈민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자신이 없었다. 교수들은 야외수업과 이야기 식 수업으로 노숙인 수강생의 참여를 유도하며 수업의 체계를 잡아갔다.

노숙인 수강생들은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수업이 일반 대학의 수업과는 다르다고 자부한다. 빨랫줄·전깃줄에 목매기, 쥐약·농약 마시기, 유서 두 장 정도는 기본으로 써 본 ‘저력’을 가진 이들이 ‘염라대왕 무르팍 앞’까지 다녀온 체험에서 내뿜는 내공은 수업의 질을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졸업생들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인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고백한다. 빗속 처마 끝에서 밤새워 책을 읽었던 추억, 동료들과 격의 없이 나눴던 교감과 소통이 상처받은 맘을 위로해 삶에 대한 애착과 인간애를 심어주었다고 전한다.

교수와 실무진의 경험담은 전문적이고 딱딱해서 다소 지루하지만 수강생들이 암울했던 과거를 시와 수필로 솔직히 풀어낸 글들은 읽으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한 수강생의 시 구절을 소개한다. ‘요즘 같은 가을밤 서울역 광장에서/우리는 아침을 기다리며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온갖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인문학#노숙인#성프란시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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