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문학예술]걷다가 쉬다가… 그들은 文學이 되었다
더보기

[문학예술]걷다가 쉬다가… 그들은 文學이 되었다

동아일보입력 2012-04-28 03:00수정 2012-04-28 04:43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여행, 그들처럼 떠나라!/박범신 외 지음/512쪽·1만6500원·동양북스
서점에는 갖가지 여행서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용을 짚어보면 아쉬움이 들기 십상이다. 사진을 빼곡히 싣고 여정을 단순히 되짚어보는, 개인적 블로그에나 어울릴 법한 내용에 그치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간접경험이나 대리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사진 정도가 눈에 아른거릴 뿐이다.

전북 군산시 금강하구. 철새도래지의 낙조. 군산이 고향인 고은 시인은 “바람 맞고 비 맞아도 굴하지 않는 새는 나의 가장 큰 스승이요 종교”라고 말한다.동양북스 제공
책을 읽었다면 가슴에 남는 몇 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서는 반갑다. 박범신 김용택 강은교 조정래 이문열 김탁환 김주영 이순원 하성란 함민복 하일지 구효서 성석제 정호승 고은. 한국 문단의 주춧돌 같은 문인 15명이 쓴 여행기다. 이들이 출연했던 SBS ‘감성여행’의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기행문에 시와 소설의 구절들을 추가해 사색의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이들과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문인들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지도와 함께 넣은 여행정보도 쏠쏠하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를 찾은 박범신은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여행이 좋은 건,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일상과 달리, 그저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일탈’의 편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원 인제군 은비령을 찾은 이순원은 ‘걷는 여행’의 의미를 짚는다. “걷다 보면 인생을 배운다. 내가 발을 내딛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길이든 목적지가 아니라, 걷는다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온몸으로 열심히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문인들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대상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장소, 사물이라고 해도 이들의 안목을 거치면 달리 보인다. 강원 양양 5일장을 찾은 강은교는 생선 좌판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이 식탁 앞에 앉아 열심히 오늘을 살아갈 힘을 숟가락질하는 동안,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감지 못한 갈치와 은대구와 고등어는 눈 속에 바다를 담고 있다.” 하성란은 경남 거제시 지심도의 푸른 앞바다에서 희망을 읽는다. “찬란한 지심도의 햇살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잘 견뎌 왔으니 지금이 있는 거라고/…/파도에 깎이고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도 인내와 단련 속에 소망은 빚어지는 거라고.”

주요기사

여행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문인들이 잘 하지 않던 얘기들도 여행을 떠나서는 술술 풀어냈다. 경주 읍천 마을을 찾은 함민복 시인은 25년 전 인근 월성원자력발전소를 다닐 때 친구 5명과 합숙하며 습작했던 추억을 털어놓는다. 전북 김제시 금산사 뒤편 연리지(일명 ‘사랑의 나무’) 숲을 찾은 조정래는 아내(김초혜 시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글을 써놓고 나면, 아내가 가장 먼저 그 글을 읽어보고 불완전한 부분을 끄집어낸다. 그러면 나는 굉장히 화를 낸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기분 나쁜 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평생 그 일을 계속해 주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아내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온전히 김초혜만의 남자니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향기#문학예술#여향#그들처럼 떠나라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