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980년 美가 전두환 지지한 건 ‘최악의 실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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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그렉 브라진스키 지음·나종남 옮김/

504쪽·2만3000원·책과함께

“미국이 제시한 이상을 한국 국민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전수한 기술 때문이 아니라 천재적 성향을 가진 한국인의 우수한 능력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새로운 독립국가들의 국가 형성에 개입했다. 당시 미국이 개입한 30여 개의 독립국가 가운데 미국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 즉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모두 달성한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6·25전쟁 발발 당시 가난했던 독재국가가 미국의 도움으로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한 비결은 뭘까.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한국이 서구 열강이 아닌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에 반(反)서구의 성향이 강하지 않았고, 미국이 이식하려 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자기 상황에 맞게 수정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되고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이 책은 광복 이후 한국의 국가 형성 과정에 미국이 끼친 영향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술했다. 미국 정부의 문서들을 인용해 설득력을 높였다.

미국이 1948년 이승만을, 1961년 박정희를 지지함으로써 당시 한국에서 민주정부가 등장할 기회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 같은 미국의 결정으로 1948년 좌익 주도 혁명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막고, 1960년대 경기침체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반면 1980년 미국 정부가 전두환을 지지한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며 “향후 한미관계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흠집이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독재자들을 설명하는 데 ‘발전 지향적 독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들은 인권을 탄압했지만 산업과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킴으로써 한국 사회가 민주화의 선행조건을 갖출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박정희를 지지한 것도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독재가 심해지자 미국은 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1972년 유신헌법이 공포된 직후 윌리엄 포터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 국무부에 보낸 전보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27년 노력해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박정희가 한 번에 날려버렸다”고 한탄하면서도 “박정희에게 이러한 조치를 당장 포기하고 기존 헌법을 복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부족하니 아예 (그런 요구는) 꺼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며 뒷짐을 졌다.

저자는 1960년대 말 이후 반정부 학생운동에 대해 서술하면서 대표적 인물로 최근 별세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꼽으며 3쪽 분량을 할애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지지자에서 1970, 1980년대 과격한 반정부 운동의 지도자로 변신한 김근태의 경력은 발전 지향적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순조롭게 발전할 기회를 놓쳐버린 박정희 정권의 무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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