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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조선선비는 비전도 책임감도 없는 지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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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조선선비는 비전도 책임감도 없는 지배층

동아일보입력 2011-12-17 03:00수정 2011-12-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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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계승범 지음/304쪽·1만4000원·역사의아침
‘선비’라는 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고상하고 지조 있는 조선의 지도층이다. 또 하나는 높은 지위를 누렸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집단이다.

저자의 평가는 후자 쪽이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선비에 대한 긍정적인 담론만 무성하다”며 비판적인 입장에서 선비를 평가했다. 조선 왕조나 유교에 대한 평가에는 좋고 나쁨이 있는데 왜 유교 이데올로기로 사실상 조선 왕조를 장악했던 선비에 대해선 긍정으로 치우쳐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다.

저자는 선비를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유교적 지식과 윤리로 무장하고 지배층을 형성한 최고 엘리트 집단 즉, 사대부”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선비들은 유교적 가치와 덕목을 내세워 지식과 경제, 권력을 독점했다.

이 선비들이 장악했던 조선은 가난했고, 왜란과 호란으로 국가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군사력이 약했고, 민심은 조정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비들은 조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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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지조와 의리’를 강조했던 것은 실제로는 명나라가 주도했던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왜란 때 조선에서 일어난 의병을 명나라 측에서도 의병으로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고, 호란 때 삼학사(三學士)가 죽음까지 불사하며 지키려 한 것의 본질 또한 명에 대한 의리였다고 설명한다.

선비들이 ‘청빈’과 ‘안빈낙도’를 수신(修身)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눈길을 보낸다. 사림의 상징인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이황 이이 등은 지방과 서울에 많은 노비와 집, 논밭을 보유한 부호였다는 것. 이황은 노비를 367명, 논과 밭을 각각 1166마지기와 1787마지기씩 소유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비들은 또 중국에서도 심하지 않았던 서얼과 여성 차별을 더욱 심화시켰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잔재가 남았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선비들의 글이나 그림, 부분적인 행적만 살펴서 감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살았던 시대 속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조선의 선비들은 지배계층으로서 자기들 본연의 임무에 태만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지배층”이었다고 매섭게 비판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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