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거지… 매춘부… 중세유럽 밑바닥 인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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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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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의 뒷골목 풍경/양태자 지음/1만5000원·252쪽·이랑

빈부 격차가 심했던 중세 유럽의 거리에는 거지들이 바글바글했다. 1700년경 독일 쾰른에서는 인구 4만여 명 중 4분의 1이 거지였고, 베를린에서는 11만여 명의 인구 가운데 1만 7000여 명이 거지였다. 당연히 거지들 사이에 생존 경쟁이 치열했다. 서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거지들끼리 동맹을 결성한 도시들도 있었다.

거지들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나자 15세기 이후 독일의 몇몇 시 당국은 거지들에게 메달로 된 ‘거지증서’를 발행해 증서를 가진 거지들만 제한된 지역 안에서 구걸하도록 했다. 단속도 심해져 거지가 불법으로 구걸하다 적발되면 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두들겨 맞았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했다. 1550년 독일 뮌스터에서는 거지들의 구걸 시간을 법으로 정했다. 오전에만 구걸할 수 있었고 오후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구걸이 금지됐다.

12, 13세기 유럽에는 공중목욕탕이 활황을 이뤘다. 14세기 초부터는 목욕탕에서 결혼식 피로연까지 열 정도였다. 목욕탕은 사람들이 거나하게 먹고 마시는 데서 나아가 남녀 혼탕과 매춘까지 벌어질 정도로 문란해졌고 매독과 흑사병 등이 창궐하자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이후 중세인들은 잘 씻지 않는 대신 향수로 악취를 숨겼다.

봉건제 사회였던 중세 유럽의 역사는 대개 주류 지배층을 그리고 있지만 이 책은 당시 뒷골목을 전전하던 비주류 인생들에 초점을 맞췄다. 거지, 사형집행인, 동물 가죽 벗기는 사람, 매춘부, 거리의 악사, 마녀의 누명을 쓰고 희생된 사람 등 비주류층의 밑바닥 인생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비교종교학자인 저자는 20여 년간 독일에서 헌책방과 벼룩시장을 뒤져가며 중세 유럽에 관한 희귀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했다. 저자는 중세 도시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서민들의 갖가지 풍속을 이야기꾼처럼 흥미롭게 들려준다.

매춘부들은 천국에 가고 싶어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교회에 예물로 바쳤고, 사형집행인은 죄수의 목을 한 번에 베지 못하면 군중에게 맞아 죽기도 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여자가 여러 남자와 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여겨 쌍둥이를 버리는 일도 많았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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