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예순 선비, 18세 기생에 푹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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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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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상기/동고어초 지음·안대회 이창숙 옮김/328쪽·1만3000원·김영사

“순옥은 고개를 숙이고 치마를 만지작거린다. 낙안선생은 그 치마를 빼앗고 그 팔을 당긴다… 선생은 손으로 보드라운 가슴을 더듬어 두 복숭아를 딴다.”

강원도 홍천의 환갑을 맞은 선비 낙안선생과 열여덟 살 기생 순옥의 합방을 묘사한 대목이다. 43년의 나이 차가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도 독특하지만 이 작품이 19세기 전반에 씌어진 희곡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우리말로 옮긴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2007년 고서판매상으로부터 ‘북상기(北廂記)’라는 희곡을 수집했다. 그때까지 조선시대 희곡은 1791년에 쓰인 이옥의 ‘동상기’가 유일했다. 조선시대 희곡 자체가 귀한 데다 남녀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작품은 중국의 구어체를 글로 표기한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였다.

양반 사대부인 낙안선생은 자신의 환갑잔치에서 본관사또가 보낸 기생들의 춤을 구경하다 순옥에게 반해 연애시를 보내며 구애한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표현과 묘사의 음란성 면에서 조선시대 한문문학, 국문문학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다. 지은이 동고어초의 본명과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작품에 고사와 시문을 풍부하게 인용한 것으로 보아 고전문학에 밝은 선비로 추정된다. 박식한 선비가 대체 왜 이처럼 대담한 성행위를 담은 글을 쓴 걸까. 지은이의 서문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대지 위에는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 지혜로운 자와 모자란 자를 따질 것이 없이, 산대놀음과 잡극을 보거나 천박한 풍화(음담패설)를 들으면 모두들 입을 딱 벌려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는다. 심지어는 권태와 피곤, 옳음과 그름까지도 잊도록 만든다. 인간 심리가 똑같이 그렇고, 풍속이 본래 그렇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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