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전쟁공포 잊으려 토하도록 먹었다” 이라크 美軍병사와 가상 편지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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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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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아멜리 노통브 지음·허지은 옮김/190쪽·1만 원·문학세계사

‘친애하는 아멜리 노통브, 나는 미군 이등병입니다. 이름은 멜빈 매플, 그냥 멜이라고 불러주세요.’

아멜리 노통브가 어느 날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에게서 받은 한 통의 편지로 이 작품은 시작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초판 22만 부를 찍으며 화제를 일으킨 이 작품은 인기 작가의 실제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가 세계 여러 독자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내용이 논픽션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속 ‘노통브’는 어디까지나 ‘허구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작품 속에서 인기 작가인 노통브는 미군 병사인 매플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에게 흥미를 느낀다. 매플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백수로 지내다가 1999년 먹고살기 위해 군대에 지원했으며 2003년 이라크로 파병돼 조지 W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매플이 편지에 쓰는 상세한 이야기들은 더 충격적이다.

‘로켓포, 탱크, 바로 옆에서 터지는 시체, 내 손으로 죽인 사람들, 나는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 우리가 쇼크 상태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얼이 빠진 채, 겁에 질려 전투에서 돌아와서는 바지를 갈아입은 다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먹을 것에 달려드는 것입니다.’

맥주, 햄버거, 감자튀김, 땅콩버터, 사과파이, 아이스크림. 살아 돌아온 미군 병사들은 전투 후 공포와 공허감을 잊기 위해 배가 터지고 토할 만큼 음식을 ‘흡입’한다는 것. 그래서 입대 당시 키 180cm에 50kg으로 말랐던 매플은 이라크에서 6년을 보내며 180kg으로 늘어난다.

작품의 기발한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에 100kg 이상의 살이 새로 붙은 것에 대해 매플이 이를 ‘자신이 얼굴도 모른 채 죽였던 이라크 여성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으로 여긴다든가, 실의에 빠진 그가 노통브의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불어나는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반전(反戰) 행위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 등이다.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씨는 ‘생명의 한형태’에서 전쟁과 비만이란 다소 동떨어진 소재들을 편지 형식으로 절묘하게 연결했다. 문학세계사 제공(왼쪽)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씨는 ‘생명의 한형태’에서 전쟁과 비만이란 다소 동떨어진 소재들을 편지 형식으로 절묘하게 연결했다. 문학세계사 제공(왼쪽)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편지로 만나 서로를 알아간다는 서술 방식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여러 가지 반전과 호흡 조절을 통해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 노통브가 편지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편지 예찬’ 식의 내용들이 두서없이 끼어드는 것은 작품의 흐름을 깬다.

소설 후반부에 매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노통브와 매플이 진짜 친구가 되는 말미는 마음을 살짝 짠하게 만든다. 프랑스 인기 작가이자 한국을 포함한 35개국에 자신의 책을 선보인 작가의 대중적 필력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사이에서 급속히 비만증이 퍼지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전쟁과 비만 사이의 상관성을 찾아보기 위해 고민하다 작품을 쓰게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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