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원자력, 공포의 핵인가 에너지의 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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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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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딜레마/김명자 지음/432쪽·2만 원·사이언스북스

《그렇다. 오늘날 원자력은 딜레마다. 동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은 지나간 일이 됐지만 방사능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체도 냄새도 없이 후쿠시마를 점령한 방사능은 일대를 유령의 세계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 중이며 독일 집권연정이 이 영향으로 지방선거에서 연패하는 등 세계가 ‘원자력 고민’에 빠졌다. 원자력을 이용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
전 환경부 장관으로 2009년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장’으로 내정(위원회는 아직 출범하지 않음)된 바 있는 저자가 인류의 고심거리로 떠오른 원자력 이용 문제를 과학사적 문화사적 배경과 함께 짚어가며 원자력 이용의 미래를 그렸다.

○ 원자폭탄의 개조로 탄생한 원자력발전

원자력에 대해 일반인이 가지는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붕괴 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원전 반대 여론이 비등한다. 저자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이런 공포에 대해 “인류 사회가 원자력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의 이미지는 사회적 유전자로 전승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의미다.

이런 공포의 배경에는 현재의 원자력 발전이 원자폭탄 원리의 변형이라는 사실이 한몫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개발한 원자폭탄은 과학적 연구결과를 폭탄이라는 실물로 실현하기 위해 2년여 동안 3000여 명의 과학자가 미국의 로스앨러모스에 ‘원자도시’를 이루어 살면서 급박하게 완성했다.

저자는 “원자폭탄이 먼저 나오지 않았다면 원자로는 원자폭탄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효율성과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모델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원자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 관계를 밝힌 방정식(E=mc²)을 발견했던 이상, 과학자들은 언젠가 원자핵의 극미한 질량 변화를 천문학적 에너지로 바꾸는 일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방사능의 ‘원초적’ 공포

올해 4월 21일 지구의 날을 기념해 국내 환경단체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핵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올해 4월 21일 지구의 날을 기념해 국내 환경단체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핵 발전 대신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원자폭탄의 엄청난 파괴력에 대한 짐작은 원자폭탄이 등장하기 전부터 문학작품에 등장해 소수의 고의로 전 세계가 파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부각시켰다. 마녀나 악마가 차지하고 있던 악역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했다는 것이다. 1913년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허버트 웰스가 공상 과학 소설 ‘해방된 세계’에서 원자력에서 비롯된 아마겟돈과 황금시대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류에게 원자력의 이미지는 공포 일색으로 각인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전쟁 통신원으로 일한 존 허시가 1946년 8월 발간한 ‘히로시마’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고등학생의 필독서가 되면서 원자폭탄의 공포를 증폭시켰다. 피폭의 참상을 담은 허시의 책은 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방사성 물질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는 것이다. 원폭에 대한 공포는 이어 ‘그날이 오면’ 같은 수많은 영화로 재현됐다.

1960년 이후는 원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대결구도가 두드러지는 시기였다. 반핵론자들은 원자력산업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계급구조와 기술로까지 대상을 확대했고, 보수 진영은 새로운 기술을 좀 더 광범위하게 확대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1969년 대도시 뉴욕 인근에서 일어난 스리마일 섬 사고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인류에게 다시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

○ ‘징검다리 에너지’로서의 원자력

가압경수로 6기가 가동되고 있는 울진 원자력발전소. 국내 원자력발전은 총전력생산량의 34.2%를 차지한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가압경수로 6기가 가동되고 있는 울진 원자력발전소. 국내 원자력발전은 총전력생산량의 34.2%를 차지한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2003년 8월 미국 동부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25시간 동안의 정전으로 뉴욕 시 1700여 곳의 상점이 약탈당했고 재산 피해만 1억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전체 발전량 중에서 원자력은 계절 변화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반면 천연가스와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는 전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높아질 때만 투입된다. 그만큼 원자력은 온실가스 감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의 주요국들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원자력을 택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우라늄의 채굴과 농축, 원전의 운영과 해체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화석연료 발전소의 1∼2% 수준으로 재생에너지와 비슷한 것으로 산정된다. 경제성이나 에너지 안보(에너지 수입이 중단되더라도 화석연료는 20일만 버틸 수 있는 반면에 원자력으로는 2년 이상 가동이 가능) 측면에서도 원자력은 유리한 점이 많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신재생에너지로 현대사회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가 아직은 벅찬 상태다.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로 가기 전까지 기존 산업 구조와 도시 인프라를 지탱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에너지’로 원자력을 이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아울러 한계와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원자력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원자력을 다루는 사회적 합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사업 추진 방식이었던 결정-발표-옹호 방식을 버리고, 시민 사회와 정부, 원자력 사업자가 함께 결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데 책의 방점이 찍힌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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