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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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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동아일보입력 2011-05-28 03:00수정 2011-05-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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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최인호 지음/391쪽·1만2800원·여백미디어
최인호가 돌아왔다. 2006년 장편 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작품으로 그는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이번 작품이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라는 고백도 곁들였다. 그는 침샘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잠행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소설 그 자체보다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더 궁금하다. ‘작가의 말’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투병 중 글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하는 대목이 먼저 눈에 띈다. 그는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손톱이 빠졌다.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와 손가락에 끼우고 집필했다”고 밝혔다.

최 씨가 50년 동안 쓴 소설 중 상당수는 역사소설, 대하소설, 종교소설이다. 또 그 작품들의 대부분은 청탁으로 쓴 연재소설이었다. 그는 “이 소설은 청탁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동안 마라톤 선수처럼 호흡이 긴 문장 스타일이 몸에 뱄다면서 암에 걸린 덕분에 자연스럽게 ‘장거리 주법’을 버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라고 그는 말한다.

크게보기최인호 씨가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육필 원고. 여백미디어 제공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낯익은 모든 것에서 생경함을 느끼게 돼 혼란에 빠지는 K의 이야기다. 토요일에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는 K. 그러나 그는 토요일엔 단 한 번도 자명종을 맞추고 잔 적이 없다. 욕실에 놓여 있는 스킨은 원래 쓰던 제품이 아니다. 부엌에서 요리 중인 아내는 분명 아내가 맞지만 왠지 낯설다. 낯익은 딸, 낯익은 강아지, 낯익은 침대….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은 낯이 익은 대상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이 느껴진다. 마침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가짜’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 K는 사흘에 걸쳐 본래의 자신을 찾아 나선다.
암과 싸우면서 5년 만에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최인호 씨. 여백미디어 제공
환상과 사실이 교차하는 이 작품을 읽은 뒤 ‘작가의 말’에서 쓴 ‘고독한 독자인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애써준 또 하나의 작가인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대목을 다시 펼쳐 그 뜻을 헤아려봤다. K는 낯익은 것들과 하나씩 이별해 가면서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선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발문에서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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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K처럼 최 씨 역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 배경은 역시 암 투병이라는 현실일 것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의상이며, 우상이며, 성 바오로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幻花)임을 깨우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 주신다면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고 다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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