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에 대한 존경[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8〉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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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선원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항해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에선 선박에서 떨어지면 바로 목숨이 위험하다. 그래서 배를 탄다는 것은 무섭고 두렵다. 필자도 세 번 정도 저승사자 앞에 다녀왔다.

1등 항해사 시절이었다. 큰 선박이 부두에 붙기 위해서는 강한 밧줄로 꽁꽁 묶어야 한다. 처음에는 선박과 육지의 간격이 넓지만 이를 점차 줄여 부두에 딱 붙인다. 마지막 정리를 할 때였다. 밧줄 하나가 선박과 부두의 접촉 충격을 줄여주는 고무판에 끼어버렸다. 밧줄 감는 장치를 이용해 서서히 밧줄을 감으면 그 고무판으로부터 밧줄이 떨어져 나온다. 그 상태를 1등 항해사가 뱃전 위에서 보고 신호를 해줘야 한다. 나는 뱃전 위에 올라섰다. 처져있던 밧줄이 서서히 감겼고 점차 장력이 탄탄히 걸렸다. 순간 위험을 직감했다. 밧줄이 고무판에서 떨어져 나온다면 바로 수직으로 튕겨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뒤돌아 갑판으로 뛰어내리려는 동작을 취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다들 “괜찮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뛰어내리는 순간 밧줄이 동시에 나의 배 앞부분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근무복에 그 자국이 남아 있었다. 1, 2초 사이에 생사를 오간 것이다.

원목선을 탈 때 일이었다. 원목을 싣는 방법이 알래스카는 좀 달랐다. 선박을 바다에 세워두고 뱃전에 끌어다 둔 원목을 담아서 싣는다. 그곳 바다 경치가 너무 좋아 후배들이 원목더미에 올라가 보자고 했다. 후배 두 명이 먼저 올라갔다. 이어 내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원목에 미끄러져 버렸다. 몸이 물속으로 쑥 빠졌다. 허우적거리는 순간 후배들이 양손을 잡아줬다. 위험천만이었다.

배에서 육지로 가려면 통선을 이용해야 한다. 닻을 놓고 외항에 있으면 작은 통선을 불러서 육지로 간다. 그날은 위험한 날씨도 아니었다. 모든 선원들이 내려가고 1등 항해사인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갈 차례였다. ‘갱 웨이’라는 30도 각도로 설치된 사다리를 이용하는데, 위험하므로 항상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통선이 가까이 와서 내가 발을 내리는 순간 이 통선이 뒤로 빠져버렸다. 내 몸의 반쯤은 통선 위에 올라갔다가 오른쪽 발을 딛지 못하고, 몸의 중심이 바다 위에 놓인 상태가 됐다. 나는 한손으로 갱 웨이에 매달려 있었다. 통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2, 3분이 걸렸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면 힘이 빠져 손을 놓고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선박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 그래서 해양대 4년 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길러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매주 M1 소총을 들고 영도 일주 구보를 하며 극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다. 약 3시간 구보. 깔딱 고개를 넘을 때는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았다. 100여 차례 행해진 구보는 바다의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옛날에는 선원들을 경시하여 ‘뱃놈’이라고 했다. 하지만 죽음을 무릅쓴 그들 덕분에 한국의 무역이 있다. 그 덕에 우리 경제가 돌아간다. 그들을 ‘뱃놈’이 아니라 ‘뱃님’으로 부르며 그들의 가족들도 함께 대우해주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선원#죽음의 문턱#뱃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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