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착시 일으키는 노인 일자리[현장에서/남건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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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충북 청주시 한 공원에서 정부 지원 일자리를 맡은 노인들이 낙엽을 치우고 있다. 청주=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지난달 충북 청주시 한 공원에서 정부 지원 일자리를 맡은 노인들이 낙엽을 치우고 있다. 청주=남건우 기자 woo@donga.com
남건우 경제부 기자
남건우 경제부 기자
“일부에서는 노인 일자리를 질 나쁜 일자리라고 하는데…, 노인분들이 좋은 일자리를 통해 건강도 증진하고 보람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지난달 23일 충북 청주시에 있는 한 시니어클럽에 구윤철 기획재정부 차관이 들렀다. 설 연휴를 맞아 정부 재정으로 임금을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현장을 답사하는 자리였다.

구 차관은 이 시니어클럽에 있는 재봉 작업장과 근처 반찬공장을 둘러본 뒤 클럽 안에 있는 카페에서 노인 바리스타들과 함께 직접 커피를 내렸다. 구 차관은 “감잎차를 연구해서 카페에서 팔게 되면 프랜차이즈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을 치켜세웠다. 구 차관의 격려에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같은 시각, 시니어클럽 바로 옆에 있는 한 공원에서는 노인 3명이 낙엽을 쓸어 담고 있었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공원관리 업무를 맡은 노인들이었지만 막상 공원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A 씨(81)는 “쉬엄쉬엄 하지. 뭐 할 것도 없는데”라며 일손을 놓았다. 노인들이 더 할 일이 없어 일찍 공원을 떠나려 하자 이들을 관리하는 직원은 “아직 가시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 결국 노인들은 20분가량 벤치에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다. 이들이 하는 일과 표정, 분위기는 바로 옆에 있는 클럽 안의 노인들과 비교됐다.

정부는 고용 악화와 노인 빈곤에 대응하기 위해 노인 일자리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달에는 60대 이상 일자리가 1년 전보다 51만 개 급증하면서 고용 지표가 상당히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문제는 늘어난 정부 지원 일자리의 상당수가 공원 청소를 맡은 A 씨가 하는 일처럼 ‘하나 마나 한’ 단순작업에 그친다는 것이다. 구 차관은 언론 등에서 이런 지적이 자꾸 나오자 괜찮은 노인 일자리도 많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설 전에 시니어클럽 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구 차관은 실제 이날 현장에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양산해 통계를 왜곡한다고 하는데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일자리도 질 나쁜 일자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많은 노인 일자리 중 일부 ‘괜찮은 일자리’만 보고, 바로 옆에 있었던 ‘질 낮은 일자리’의 현장은 미처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일부러 찾지 않은 것인지, 모르고 지나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정부가 만들어낸 일자리 중 상당수가 이처럼 부가가치를 거의 창출하지 않는 허드렛일에 그치는데도 이들 일자리 덕분에 전반적인 고용사정이 많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통계 착시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고령화와 저성장 사회를 맞아 정부가 나서서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좀 더 지속가능하고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복지 정책인 노인 일자리가 만들어낸 착시현상을 정책 성과로 포장하지 말고 말이다.
 
남건우 경제부 기자 woo@donga.com
#노인 일자리#고용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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