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재·부품 국산화 막는 ‘망국법’ 6년간 눈감더니 뒤늦게 기업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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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개최한 긴급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일부 기업인들이 소재·부품 국산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규제를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법은 통과되던 2013년 4월 재계를 중심으로 ‘망국법’이라는 우려까지 나왔으나 법 통과가 강행됐다.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불화수소의 수출을 규제하자 이 법이 초래한 소재·부품 산업의 공백이 두드러졌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업계는 22개월 동안 17회에 걸친 간담회를 통해 화평법안을 이끌어냈다. 국회는 이를 묵살하고 16일 만에 단 한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강력한 규제를 담은 새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시행된 법은 워낙 현실성이 떨어져 제대로 적용되지도 못하다가 2016년 다시 개정돼 올 초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법이 통과된 2013년 이후 그 법은 화학물질 연구개발(R&D) 의지 자체를 꺾어 소재·부품 산업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저해했다.

2015년 시행 법안에서 모든 신규 화학물질에 분량과 관계없이 부과했던 등록 의무는 R&D조차 못하게 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100kg 이상 신규 화학물질에만 부과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그러나 신규 화학물질 하나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서류 작업에만 8∼11개월이 걸리고 정보 공개 과정에서 기업 비밀 유출 우려가 있다 보니 외국 기업이 공급을 꺼리는 등 부작용은 여전히 심각하다.

2012년 경북 구미공단의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마찬가지다.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기준이 기존의 79개에서 413개로 무려 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사업장마다 최소 수억 원씩의 시설 개선비용이 들다 보니 작은 회사들은 아예 국산화를 포기하고 수입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최근 여권에서는 대기업이 국내 소재·부품 산업을 키우지 않아 일본의 수출 규제가 먹혀드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은 화평법 화관법 속의 과잉 규제가 국내 소재·부품 산업 발전의 큰 걸림돌이었다. 기계 전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자유롭게 다룰 수 없으니 소재·부품 국산화는 생각도 하기 힘들고 외국에서 갖다 쓰기에 바빴다.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또 규제 개혁이 말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화평법 화관법부터 고쳐야 한다.
#한국 수출 규제#망국법#국산화#화학물질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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