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심상치 않은 주한 미군 해외차출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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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콜리어필드 체육관.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 바 없고 조만간 그럴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두 달 전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1개 대대가 중동으로 차출될 것이라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를 부인하는 발언이었다. 대다수 언론은 게이츠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아파치 전력의 아프간 차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5개월 뒤 양국은 아파치 대대의 중동 차출을 전격 발표했다. 양국은 아파치 헬기 대신 대전차 킬러인 A-10 공격기를 배치하기로 했다가 얼마 뒤엔 F-16 전투기로 바꾸는 등 후속조치에 혼선을 빚었다. F-16이 아파치 헬기의 전력공백을 메울 수 있느냐는 논란도 뒤따랐다.

최근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이 몇 년 안에 주한미군의 중동지역 이동배치를 검토한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국방부는 27일 “주한미군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멀린 의장은 당시 장병들과 나눈 얘기는 공식답변이 아니며 주한미군 전력은 지금처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멀린 의장의 발언을 미국이 주한미군을 다른 분쟁지역으로 투입하도록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본격 실행하겠다는 메시지로 보고 있다. 이런 기류는 1년 전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이임 기자회견에서도 감지됐다. 벨 사령관은 “주한미군 병력 수준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이라크와 아프간전쟁 승리를 위해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2년을 전후해 주한미군 병력이 감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군이 한반도 방어를 주도하면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 지상병력을 철수하거나 아프간 등으로 이동배치할 것이라는 얘기다. 멀린 의장이 주한미군의 중동지역 배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전시작전권 전환을 ‘중대한 변화’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과거 주한미군 감축이나 해외 차출설이 나올 때마다 미국은 “당분간 또는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결국 자체 계획대로 실행에 옮겼다. 전례를 볼 때 정부는 좀 더 면밀하게 미국의 진의를 파악해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미 연합전력의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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