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이겨온 사회[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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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왝 더 독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미국 대선을 열흘 앞두고 대통령이 걸스카우트 소녀를 성추행한 사건이 터진다.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은 위기를 해결하고자 정치 해결사 브린을 모셔오고, 브린은 명성과 몸값에 걸맞게 진실을 뒤덮을 거짓을 조작해 낸다. 미국인들 거의가 모르는 이름의 나라에 반미국적인 테러리스트라는 모함을 씌우고는 곧 전쟁이 터질 거라는 뉴스로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이제 성추문 따위는 관심 밖이다. FBI가 백악관의 조작에 제동을 걸자 브린은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더 큰 거짓을 만들어내 더 성공적으로 속인다. 그 덕에 지지율이 급등하여 그들은 재선에 승리한다. 제목 ‘왝 더 독(Wag the dog)’은 개의 꼬리가 개를 흔드는, 즉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말한다. 정치 사기극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재선에 성공한 이유는, 불리한 사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날조하고 선동한 덕이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몇 달째 자발적 격리 중이다. 개방 방역이라는 희한한 정책 때문에 빗물이 새는 방 안에서 지붕을 고치는 대신 몇 달째 바닥만 닦고 있는 의료진과 국민들은 늘어나는 해외 유입으로 이 전쟁을 처음부터 다시 치러야 할 판이다. 개방 방역의 위험을 알면서도 여태껏 고수해 온 정부를 보노라면 우리 국민이 콩쥐 같고, 대한민국이 힘없는 식민지인가 싶어 종종 서러워진다.

정부는 한국의 방역 정책을 배우려는 외국의 문의가 쇄도한다고 자랑하지만, 지금의 성과는 의연하게 대처한 대구 시민과 의료진의 희생, 남을 배려하는 국민성이 일궈낸 결과다. 외국이 따라 해 봤자 우리처럼은 어렵다. 우리 국민이어서 가능한 거다. 자화자찬에 능한 정부일수록 내세울 게 없는 법이다.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이 어떤지 우리는 안다. 칭찬은 국민에게 돌리고 잘못을 떠맡는 게 정부의 자세다.

이제 곧 선거다. 나는 투표 때마다 모든 걸 믿고 맡길 조감독을 구하는 마음으로 임한다. 정직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공금을 자기 돈처럼 아끼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우리는 위기가 닥칠수록 나보다 남을 더 챙기는 고운 심성의 국민들이다. 정치 쇼에 속아 넘어가 반목하고 헐뜯는 건 우리답지 않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권은 애국심도 능력도 없다. 국민들이 깨어 있으면 위정자가 함부로 못 한다. 우리는 귀하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소름 끼쳤던 건, 첫 번째 사기극이 성공했을 때 백악관 참모들의 기뻐하는 모습이다. 전 국민을 완벽하게 속인 걸 확인한 그들은 축배를 마시며 더 큰 사기극을 꾸민다. 양심, 죄책감, 망설임은 전혀 없다. 놀랍게도 23년 전 영화다.
 
이정향 영화감독
#왝 더 독#4·15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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