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좌파도 우파도 가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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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사파리/대런 맥가비 지음·김영선 옮김/354쪽·1만6500원·돌베개

2017년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가난 사파리’의 저자 대런 맥가비는 중동과 아프리카계 이민자 등 서민들이 모여살던 이 낡은 24층 아파트가 상징하는 빈곤이 고향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남부의 폴록과 비슷하다고 했다. 런던=AFP
2017년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가난 사파리’의 저자 대런 맥가비는 중동과 아프리카계 이민자 등 서민들이 모여살던 이 낡은 24층 아파트가 상징하는 빈곤이 고향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남부의 폴록과 비슷하다고 했다. 런던=AFP
“… 엄마와의 관계가 고통스러워서, 나는 여러 번 엄마가 죽기를 몹시 바랐다. …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작았다. 엄마의 존재에 관한 장기 방영 드라마에서 성난 아들로 반복 등장하는 단역이었다. …”

래퍼 로키(Lok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칼럼도 쓰고 있는 저자 대런 맥가비는 2001년 어머니의 죽음이 전해졌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언급했다. 당시 그는 17세, 어머니는 36세였다. 어릴 때 당한 성폭행 트라우마에 시달려 온 어머니는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했고, 아들은 엄마의 폭력을 피해 다니며 방치된 삶을 살아야 했다.

원제 ‘Poverty Safari :understanding the anger of Britain‘s underclass’(2017년). 이 책은 2018년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어 한 조지 오웰의 뜻을 기려 제정한 오웰상(賞)을 받았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남부의 폴록에서 성장한 맥가비는 고향을 중심으로 가난의 실체에 접근했다. 폴록은 경제적인 쇠퇴와 함께 빈부격차,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극명하게 드러난 ‘가난 사파리’였고, 저자는 사파리를 즐기는 관광객이 아니라 구성원이었다.

칼럼을 모은 듯한 책의 구성이 매끄럽지는 않다. 이 책의 미덕은 세련되고 논리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감성적인 설득력이다. 저자의 가족과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가 겪어 온 변화를 읽다 보면 문제의 심각성과 보편성이 드러난다. 5남매의 장남인 그는 책 앞부분에서 동생들 이름을 언급한 뒤 미안함과 사랑을 고백하며 ‘마약은 하지 말라’는 추신을 남겼다. 이들 5명 중 4명은 알코올 또는 약물 문제를 겪었고, 3명은 전과기록이 있고, 2명은 한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3명은 파괴적 폭력적 행동으로 퇴학을 당했다.

시대를 떠나 가난은 해법을 찾기 어려운 난제(難題)다. “좌파는 가난이 정치적 선택이고, 우리가 집단의 자원을 전용해 사회의 부를 재분배한다면 가난의 영향이 완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파는 개인과 가정이 윤택해지도록 자율권을 주고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만병통치약 또는 누구 탓이라는 식의 쉬운 결론을 거부한다. 가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사회 심리 정치 문화 등에서 인간이 받는 많은 영향을 포함한다고 결론 내린다.

중독자의 삶을 경험했던 맥가비는 스코틀랜드 경찰 폭력감소반의 첫 상주 래퍼로 일했고, 반사회적 행동과 가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는 스코틀랜드 B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가난 사파리#대런 맥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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