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WHO, 中 중심적 사태가 망쳐”…분담금 보류 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1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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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미국의 자금 지원을 보류할 뜻을 시사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연일 치솟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그 책임을 WHO로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WHO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에 동의하지 않고 비판했다”며 “그들은 틀렸고 때를 놓쳤다”고 말했다. “중국 중심적(China-centric)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WHO는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고 있다”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WHO)에 돈을 내고 있는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 나아가 “WHO에 쓰이는 돈을 매우 강하게 보류할 것”이라고 했다가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고,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WHO의 한 해 예산은 약 60억 달러 규모(2019년 기준)로, 미국은 전체 회원국들의 예산 분담금 중 10%에 이르는 5억5300만 달러를 분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서도 “WHO가 망쳐놨다”, “왜 그들은 (중국을 봉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권고를 내놨는가?” 라고 날을 세웠다. 앞서 공화당 의원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며 공격 수위를 높여온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잇단 ‘중국 때리기’와 WHO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실책의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욕타임스와 악시오스는 이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1월 29일과 2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 및 경제타격을 경고하는 메모를 작성해 백악관 고위당국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1차 메모에서 최악의 경우 50만 명이 숨지고 6조 달러의 경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고, 두 번째 메모에서는 “최대 1억 명이 감염되고 120만 명이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30일 중국으로부터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지만 이후에도 “코로나19는 곧 사라질 것”, “독감보다 심하지 않다”는 등 위험성을 축소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측근인 나바로 국장의 경고조차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그의 정책결정을 바꾸지 못했다는 의미로, 백악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및 안일한 대응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당시 메모가 있는지 몰랐고 읽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를 봤더라도 당시 취했던 조치 이상을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중국을 차단하는 강한 조치를 취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수백 만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모들이 그런 우려를 하는 상황에서도 왜 코로나19 위험성을 축소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국가의 치어리더”라며 “밖에 나가서 그런 일(팬데믹)이 생길 거라고 외치면서 나라를 혼란이나 충격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통계집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미국의 이날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2만8000여 명 넘게 증가하며 40만 명을 돌파했다. 사망자는 2000명 가까이 증가하며 1만2790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단위 사망자 수로는 가장 많았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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