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高신용 2등급도 대출 퇴짜… 벼랑끝 소상공인에 여전한 은행 문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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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銀 긴급대출 지점당 하루 0.3건
소상공인진흥공단 장사진 이루자… 신용 1~3등급 시중은행 분리 유도
향후 책임 걱정인 은행들 미온적… 자체 신용평가후 대출거부 일쑤
“괜히 헛걸음” 소진공에 다시 몰려… 당국 “1~3등급은 일단 대출” 요청

소진공에는 여전히 새벽부터 긴 줄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대출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센터에서는 평소의 두 배인 80명분의 대출 신청을 접수했지만 줄을 서 있던 30여 명은 끝내 대출을 신청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소진공에는 여전히 새벽부터 긴 줄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긴급경영안정자금 직접대출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센터에서는 평소의 두 배인 80명분의 대출 신청을 접수했지만 줄을 서 있던 30여 명은 끝내 대출을 신청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은행은 지점 1곳당 하루에 0.3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센터는 1곳당 86건.’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소상공인 초저금리 대출(긴급경영안정자금 포함) 분산 처리 실적이다. 정부는 소진공 센터마다 대출 신청 행렬이 장사진을 치자 시중은행으로 업무를 일부 이관하고, 소진공 센터 신청접수는 홀짝제로 운영토록 했다.

하지만 전국 4661개 점포를 갖고 있는 5대 은행(신한, KB국민, 우리, 하나, NH농협)의 4영업일(1∼6일) 신청 처리 건수는 총 5504건으로 점포 한 곳이 0.3건을 처리했다. 반면 전국 62개 센터가 있는 소진공에는 같은 기간 2만1351건이 접수됐다. 한 곳당 하루 86.1건꼴이다.

각 센터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들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 있지만 은행에는 문의만 이어질 뿐 여유로운 모습이다. 도대체 왜 이 문제가 여태 풀리지 않는 것일까.

(1) 당초 설계부터 은행은 겉치레였다

정부는 대출 수요 병목현상이 벌어지자 4월 1일부터 △신용등급 1∼3등급은 일반 시중은행 △1∼6등급은 기업은행 △4등급 이하는 소진공 센터로 창구를 나눠 자금지원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문제는 소진공 대비 75배 많은 말단 조직(5대 은행 기준)을 갖고 있는 은행은 고신용자 대출만 맡고 나머지 대부분은 소진공이 처리토록 한 점이다.

정부가 밝힌 이유는 이렇다. 우선 시중은행이 소진공 업무 일체를 위탁처리하려면 상호협약을 맺고 전산 시스템을 연결해야 하는데 시스템 구축에 2∼3주 걸린다. 이제야 시중은행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정부 내에선 이젠 때가 늦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고비를 지났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이다. 은행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시행했다가 돈을 물리게 되면 누구 책임이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면책을 약속했지만 감독당국의 ‘주먹’이 더 무서운 은행들은 아직 미온적이다.

(2) 고신용자에게도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시중은행의 저조한 대출 실적은 은행의 ‘높은 대출 문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3등급 고신용 소상공인만을 대상으로 대출 신청을 받고 있는 시중은행은 자체 신용평가 모델에 따라 또다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에서 받은 신용등급이 1∼3등급이라고 하더라도 은행들의 자체 등급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출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은행별로 평가모델이 다르다 보니 신용등급도 다 제각각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주방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초저금리 대출을 받기 위해 주거래 은행을 방문했지만 벌써 2번째 허탕을 쳤다”며 “전화로는 코로나19 피해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더니 직원 고용 관련 서류가 필요하다지 않나, 이번에는 신용등급이 4등급이라며 안 된다고 퇴짜를 놨다”고 말했다. 무역업 종사자 김모 씨도 “신용평가사 등급으로는 2등급을 받았지만 은행에서는 ‘대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차라리 공단에 곧바로 신청할 걸 헛걸음만 했다”고 했다.

7일 금융당국은 뒤늦게 신용평가사 1∼3등급에는 은행 자체 신용평가와 상관없이 대출을 진행해달라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내부 대출지침 변경을 검토 중이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수혜대상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3) 상품 차이가 대출병목 가중시켰다

대출 상품의 차이와 처리 기관 분리도 현 상황을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다. 초저금리 적용 기간이 시중은행 상품은 1년, 기업은행은 3년, 소진공은 5년으로 각자 다르다. 낮은 금리를 선호하는 소상공인 수요가 소진공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가 주는 정책금융상품인 만큼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 차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역시 기관을 가리지 않고 각 상품을 모두 취급하게 했다면 줄서기 장사진이 더 빨리 해소될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욱이 현재 상품 구조에선 고신용도를 유지해 온 사람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는다는 시각도 있다.

김동혁 hack@donga.com·장윤정 / 세종=송충현 기자
#소진공#초저금리#긴급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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