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고는 막아라”[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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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때 같은 무작정 해고 안 돼
노사정 협력해 일자리 지켜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요즘 여기저기서 ‘병으로 죽기 전에 굶어 죽게 생겼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외에서 코로나19 확산이 그치지 않고 소비와 생산, 수출이 중단됨에 따라 경제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경제위기를 넘을 방법에 대해 국내외 경제 석학들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미적대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많은 돈을 풀어라, 둘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고는 막으라는 것이다.

첫째, 돈 푸는 것은 선진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2조2000억 달러(약 2700조 원)에 이어 추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도 56조 엔(640조 원) 이상을 검토한다고 한다. 재정적자에 아주 민감한 ‘짠돌이’ 독일 정부조차 GDP 대비 30%를 푸는 과감한 대책을 내놨다.

세계 각국이 망설이지 않고 현금을 살포하는 것은 기업이 쓰러지고 국민들이 실직하고 난 뒤에는 무슨 정책을 내놔도 소용이 없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정부가 빚을 낼 수 있는 만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한국은 재정이 건전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데 여러 차례 내놓은 대책을 모두 합해도 132조 원, GDP 대비 7%로 제일 손이 작다.

물론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을 마냥 따라할 수 없고,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므로 여력을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추가 재원 마련과 관련해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제안한 ‘40조 국민채권 발행’을 검토할 만하다. 국내에 1000조 원의 부동자금이 있으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국민들이 산다면 부동산에 몰린 투자도 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당연히 기업과 국민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돌아보자. 한국은 빨리 위기를 극복했지만 고통도 컸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했던 고금리로 기업들의 도산이 이어졌고 대대적인 정리해고로 실업자가 넘쳤다. 이처럼 아시아에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던 선진국들이 정작 2008년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치자 막대한 돈을 풀고 정부가 기업 지분까지 사들여 기업들이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더구나 지금은 경제 외적인 역병으로 인한 위기다. 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고 실업자를 줄여야 한다. 독일은 2008년 해고를 하지 않고 일자리를 나눠 위기를 극복한 모범 사례다. 노사정 합의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지켰고, 위기 이후 독일 경제는 더 강해졌다.

지금도 유럽의 대책은 기업도산 방지와 함께 해고 예방에 중점을 둔다. 가장 위태로운 이탈리아는 3개월간 해고정지 명령까지 내렸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도 기업지원 대책에 고용유지 인센티브를 넣었다. 한국도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기업에 고용유지 조건을 부가할 필요가 있다.

경총이 최근 해고 요건 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을 주장했다가 양대 노총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어려울 때 자기 몫만 챙기려는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해고를 쉽게 하고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근무시간과 임금을 줄여서라도 일자리를 나누고 함께 어려움을 버텨내야 할 때다.

기업도 당장은 사람을 줄이는 게 유리할 듯하지만, 멀리 보면 고용을 유지하는 게 좋다. 사람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데 지금 자르면 경기 회복기에 채용 비용이 더 들 것이다. 경제 전체로 봐도 구매력 있는 소비자가 많아야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 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기업은 고용을 유지하고 노조는 기득권을 양보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함으로써 노사정이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코로나19#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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