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내년 3월이 두렵다[현장에서/허동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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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띄어 앉기를 실시한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띄어 앉기를 실시한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허동준 산업1부 기자
허동준 산업1부 기자
“올해는 넘어갔지만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돌아온 한 재계 관계자의 답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질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서 보여준 경영간섭 권한이 강화된 국민연금의 ‘활약’에 대한 질문이었다.

정부는 올해 초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공시의무 없이 상장사 정관 변경과 임원 해임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또 지난해 12월 의결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은 국민연금이 ‘경영권 목적’의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역할도 부여했다.

기업들은 일단 “올해는 괜찮았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조직 재정비가 이달 초에야 마무리된 덕분이었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총 6주 전에 이뤄져야 하므로 국민연금은 시기를 놓쳤다. 바로 이 때문에 재계는 내년을 두려워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수탁자책임전문위가 주주제안 결정을 내리고, 기금운용위가 이를 의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몇 단계의 위원회가 있든 최종 의결권을 가진 기금운용위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라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머지 구성원들 중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총 5명은 당연직이다. 거기에 국책연구원 원장 2명까지 포함하면 총 20명의 기금운용위 위원 중 8명이 정부 측 인사다. 경영계, 노동계, 시민대표도 있지만 이들 중 기금운용 전문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이 같은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법학, 경제학 교수 및 경제단체 임원 등 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90.7%(39명)가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에 반대했다. 그 이유로 88.4%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독립성이 부족하다, 74.4%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지적은 새롭지 않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할 때부터 줄곧 재계가 외쳤다. 그런데도 일사천리로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벽에 대고 외치는 기분이다. 생존조차 버거운 환경 속에서 경영권 방어에도 무리하게 힘을 쏟아야 하느냐”라고 했다.

앞으로 글로벌 경제계는 코로나19 전후로 나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싸워 살아남게 하려면 이제라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최소한의 독립성, 전문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허동준 산업1부 기자 hungry@donga.com
#주주권 행사#국민연금#전문성 확보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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