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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눈물[횡설수설/우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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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눈물[횡설수설/우경임]

우경임 논설위원 입력 2020-03-27 03:00수정 2020-03-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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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각자 위치에서 번호!’ ‘하나, 둘, 셋…57, 58 번호 끝!’ 모두 100명이 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동기와 후임병들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불러대기 시작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인 전준영 씨(33)의 기억 속에 박제된 2010년 3월 26일 폭침 직후 순간이다. 그날 이후 전 씨는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천안함 10주년인 올해 1월부터 그는 같은 아픔을 겪는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을 찾아다녔다. 이 가운데 17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삶을 추적한 책 ‘살아남은 자의 눈물’을 썼다. 다음 달 초 출간된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지난 10년간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덧나고 곪았다고 증언했다. 국가로부터 치료와 재활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장애를 얻었고, 전우를 잃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밤마다 흐느꼈다. 천안함 생존 장병 중 33명이 전역했는데 이들 중 10명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한 달 전상 수당은 2만3000원. 나머지는 덜 다쳤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그조차도 받지 못한다.

▷특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심각했다. 2년 전 발표된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의 ‘천안함 생존자 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생존 장병 24명 중 절반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했고, 21명이 PTSD를 진단받거나 치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숨어 있는 질병은 각종 지원에서 배제된다.


▷천안함 폭침을 두고 두 동강 난 우리 사회에 이들을 냉소로 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정원 씨(31)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전우를 버리고 살아 돌아온 놈”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윤일 씨(32)는 “패잔병이니 사형시켜야 한다는 댓글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 천안함 생존 장병이란 사실을 가급적 숨기고 산다고 한다. “진실을 숨기려 말 맞추기를 했다” “군에서 거짓말하라고 지시받았다”는 끈질긴 의혹의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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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이라는 국가적인 재난의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 이후라고 달라졌을까. 전 씨는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서”라고 말했다. 짐작하다시피 책 제목 ‘살아남은 자의 눈물’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빗댄 것이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움 받고 아프지 않으려면 우리가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 우리는 이들의 스러진 젊음과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천안함#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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