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연구 39세 남성, 죽을 것 같이 달리는 이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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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 씨가 스파이더코리아 오상원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트레드밀에서 달리고 있다. 단거리는 무릎을 높게 올리며 힘차게 달려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이준규 씨가 스파이더코리아 오상원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트레드밀에서 달리고 있다. 단거리는 무릎을 높게 올리며 힘차게 달려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뇌과학을 연구하는 이준규 씨(39)는 요즘 전력으로 질주하는 단거리 달리기의 묘미에 빠져 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가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 단거리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취미로 시작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춤하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의 매력’ 빠져 들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중학교 땐 ‘스포츠 왕국’ 미국에서 스포츠를 잘 못해 다소 ‘콤플렉스’가 있었죠.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등학교(필립스 엑서터) 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학교에서도 스포츠를 많이 하도록 했지만 제 자신이 더 잘 하려고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엔 테니스를 했고, 피트니스를 했지만 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기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전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숨 가쁘게 달리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는 게 좋았죠.”

존스홉킨스대학 2학년 때까지 주로 달리다 ‘얼티밋 프리스비’란 원반던지기 게임을 시작했다. 얼티밋 프리스비는 7명씩 팀을 이뤄 공수로 나뉘어 원형 플라스틱(원반)을 주고받으며 득점하는 스포츠다. 원반을 잡은 선수는 10초 이내에 패스를 해야 하고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잘 달려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
이준규 씨가 얼티밋 프리스비에서 원반을 잡는 모습을 연속으로 촬영했다. 차재관 사진작가 제공.
이준규 씨가 얼티밋 프리스비에서 원반을 잡는 모습을 연속으로 촬영했다. 차재관 사진작가 제공.

“2009년 귀국해 군복무하고 2013년부터 KIST에서 일하면서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로 연구에 매달렸죠. 그러다 2018년 얼티밋 프리스비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체력이 달렸어요. 그래서 그해 가을부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라톤을 하려고 장거리를 달리는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속도를 유지하며 긴 거리를 달리는 방법을 찾다 스파이더코리아에서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스프린트 클래스를 알게 됐고 7월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전 지는 것을 싫어해요. 경쟁심이 다소 크죠.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기고 싶었죠. 그리고 숨이 차면서 힘들게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인터벌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는데 스피드가 잘 안 늘었어요.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 나섰죠.”

장거리에서 기록을 단축하는 법은 빠른 속도로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마라톤에서도 스피드가 중요한 것이다. 엘리트 선수들에게서도 지구력은 누구나 키울 수 있지만 스피드를 키우기는 어렵다. 이 씨는 이점을 파악하고 먼저 스피드를 키운 뒤 지구력을 가미할 생각으로 단거리 훈련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육상 멀리뛰기 국가대표 출신 오상원 코치(37)의 지도를 받으며 좋아졌다.

오 코치는 “마라톤 등 장거리는 동호회도 많아 배울 곳이 많지만 단거리를 배우는 곳이 없습니다. 스파이더코리아에서 스프린트 클래스를 만들면서 일반인은 물론 축구와 핸드볼 등 스피드가 필요한 엘리트 선수들, 엘리트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찾아옵니다”고 말했다.

2005년 아시아육상선수권 남자 멀리뛰기에서 은메달 획득한 오 코치는 “전력으로 질주하는 법, 순발력과 파워를 키우는 훈련 등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다들 만족해합니다”고 설명했다.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2시간씩 훈련시키고 있다. 장소는 스파이더 강남 트레이닝 센터와 잠실주경기장 보조경기장, 남산 등에서 한다.
이준규 씨(왼쪽)가 얼티밋 프리스비를 하며 한 여자 선수와 함께 포효하고 있다. 차재관 사진작가 제공.
이준규 씨(왼쪽)가 얼티밋 프리스비를 하며 한 여자 선수와 함께 포효하고 있다. 차재관 사진작가 제공.

이 씨의 최종 목표는 1km 주파 기록을 4분대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이 1km를 3분에 달리니 거의 엘리트 선수 수준까지 가고 싶은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아주 좋았습니다. 400m 인터벌 트레이닝을 기준으로 처음엔 72초에도 겨우 뛰었는데 60초까지 당겼거든요. 100m를 15초 페이스로 달리는 것입니다. 처음에 18초였으니 많이 줄였죠.”

1주일에 7일을 운동했다. 월요일 목요일 스프린트 클래스에서 훈련하고 화요일엔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단거리 달리기, 수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 인터벌트레이닝을 했다. 웨이트트레이닝도 주기적으로 했다. 그러자 몸이 탄력적으로 바뀌었다. 장거리만 달릴 경우 살이 빠져 날씬해졌지만 단거리를 달리며 근육운동을 하면서 근육질의 스프린트 선수처럼 멋진 몸매가 된 것이다.

“인터벌트레이닝은 400m 기준으로 10개까지 소화했습니다. 400m 달리고 3분 쉰 뒤 다시 달리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3개도 못했어요. 그러다 올 1월 중순에 허리 부상이 와서 좀 쉬었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좋지 않았는데 무리하다보니 통증이 왔어요.”

이 씨는 최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준규 씨는 스파이터코리아 스프린트 클래스에서 주 2회 훈련하며 몸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이준규 씨는 스파이터코리아 스프린트 클래스에서 주 2회 훈련하며 몸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부상으로 지금은 체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가을까지 체력을 회복하고 내년 봄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할 계획입니다. 1km를 3분30초에 달리는 게 목표입니다. 한 때 4분 밑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풀코스 첫 도전에서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달성하려고 한다. 마라톤 42.195km 풀코스는 1km를 4분16초로 계속 달릴 때 3시간에 주파할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달리는 게 즐겁습니다. 전 죽을 것 같이 달릴 때 쾌감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요. 다른 분들은 한강 등 야외에서 경치를 보면서 달리는 게 즐겁다고 하는데 전 400m 트랙에서 힘차게 달려 기록을 단축하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이 씨는 달리기만 할 뿐 아직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동아마라톤, 춘천마라톤, 보스턴 마라톤 등 유명한 대회에 출전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달리는 것을 즐깁니다”고 말했다.

최근 운동하면 뇌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뇌과학을 연구하며 운동을 즐기는 그는 어떤 생각일까?

“확실히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걷기만 해도 뇌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격하게 운동해야 뇌 시경세포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땐 운동을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다친 뒤 하루 종일 누워만 있기도 했는데 몸 상태도 엉망이고 정신 상태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니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운동은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좋은 약입니다.”
이준규 씨가 팔을 힘차게 흔들며 달리고 있다. 단거리 달리기는 다리 뿐만 아니라 팔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이준규 씨가 팔을 힘차게 흔들며 달리고 있다. 단거리 달리기는 다리 뿐만 아니라 팔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스파이더코리아 제공.

이 씨의 최종 목표는 나이 들어서도 지금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전 나이 들어서도 속도를 최대한 안 떨어뜨리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 때,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 제 몸의 기능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하면 유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이유가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가는 얼티밋 프리스비를 못할 경우를 생각해서였다. ‘평생 스포츠’로 달리기를 선택했고 이왕 선택한 것이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는 100세 시대 건강은 젊을 때부터 지켜야 한다는 ‘제1원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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