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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카데미賞 탈 수 있었을까[광화문에서/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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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카데미賞 탈 수 있었을까[광화문에서/박형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0-02-26 03:00수정 2020-0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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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1969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소년은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고교 3학년 때 가로와 세로 각각 30cm, 두께 3cm인 목판을 자유롭게 조각해오는 숙제가 있었다. 대부분 학생은 접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골판지에 쇠똥구리가 붙어있는 모습을 조각했다. 발상도 독특했지만 골판지와 곤충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했기에 다들 깜짝 놀랐다.

미술 교사는 미대 진학을 추천했다. 하지만 소년의 머릿속은 미국 할리우드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영화 잡지에서 본 미국 TV 드라마 ‘남과 북’에 푹 빠져 있었다. 스토리나 주인공을 좋아한 게 아니다. 배우 핼 홀브룩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과 똑같은 얼굴로 변신한 게 너무나 신기했다.

소년은 자신의 얼굴을 링컨 전 대통령처럼 메이크업한 뒤 사진을 찍었다. 영어 교사였던 담임의 도움을 받아 홀브룩을 변신시켰던 특수분장업계 거장 딕 스미스에게 “어떻게 공부하면 되느냐”고 편지를 썼다. 사진도 동봉했다. 열흘 뒤 “분장을 가르치는 좋은 대학은 미국에도 없으니 독학하는 게 낫다”는 답이 왔다.


소년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잡지와 영상을 보면서 독학했다. 소년에겐 거금인 20만 엔(약 220만 원)을 들여 스미스의 온라인 교재도 샀다. 1, 2주에 한 번씩 스스로 만든 작품의 사진을 찍어 스미스에게 보냈다.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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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가 되던 1996년 그는 단신으로 미국에 갔다. 스미스의 제자 릭 베이커의 스튜디오에 적을 두고 본격적으로 특수분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2000년 영화 ‘그린치’에서 짐 캐리를 상상 속 괴물로 분장시켜 베이커와 함께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이크업&헤어 상을 받았다.

2011년 영화계를 떠나 현대예술 분야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다키스트 아워’의 주연을 제안받은 게리 올드먼이 2016년 “당신이 분장을 맡지 않으면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 그는 영화계로 복귀한다. 그리고 올드먼을 완벽하게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로 변신시켰다. 그 덕분에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인 최초로 메이크업&헤어스타일링 상을 받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일본인의 섬세함과 집요함의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내적 정열” 등의 표현을 써가며 보도했다.

불과 2년 만인 올해 그는 ‘밤쉘’(일본 개봉명 ‘스캔들’)로 또다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이크업&헤어스타일링 상을 받았다.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들이 “일본에서의 경험이 수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의외의 답을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됐다. 왜냐하면 (일본) 문화에 질려버렸다. 너무 복종적이고, 꿈을 이루기가 너무 어렵다.”

실제 그는 지난해 3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일본 국적을 버렸다. 일본 이름 쓰지 가즈히로(십一弘)를 버리고 영어 이름 카즈 히로(Kazu Hiro)로 개명했다.

카즈 히로 씨는 일본에 계속 살았으면 아카데미상을 탈 수 없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대학 간판, 사회적 평판, 남의 이목이 중요한 일본 문화에서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기에 한계를 느끼지 않았을까. 이는 비단 일본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카즈 히로#아카데미상#미국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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