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횡설수설/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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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에볼라 사태 당시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질병 퇴치에 기여한 제프리 샤먼 미국 컬럼비아대 환경건강과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전례 없는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어 2년 안에 세계 인구의 절반을 감염시킬 수 있다”며 ‘팬데믹’(전 지구적 유행 상태) 가능성을 경고했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이 2% 정도로 사스(10%)나 메르스(30%)보다 낮지만 강한 전염력을 무기로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pandemic)은 전염병이 크게 유행한다는 의미를 강조할 때 쓰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최고 수준의 전염병 경보 단계를 말한다. 경보는 위험 정도에 따라 6단계가 있는데 이 중 최고 단계다. 현재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유행이 임박’한 5단계로 규정돼 있다. 5단계는 1개 대륙의 최소 2개국에서 병이 퍼지는 게 선포 요건인데 코로나19는 현재 아시아 중동 유럽 북미 대륙의 29개국으로 확산돼 있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전염병이 세계로 전파돼 다수가 감염된다는 의미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흑사병을 비롯해 최대 5000만 명이 사망한 1918년 스페인독감 등이 대표적인 팬데믹이다. 1946년 WHO 설립 이후에는 80만 명이 사망한 1968년 홍콩독감 사태와 1만9633명이 사망한 2009년 신종플루 확산 때 등 2차례 팬데믹이 선포됐다.

▷WHO는 지난달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팬데믹에 대해선 아직 신중한 태도다. WHO는 17일 “진짜 문제는 중국 외에서 지역 감염이 나타나고 있느냐는 것인데 아직 우리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밖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감염이 중국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고, 기존 감염자를 통해 전파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과는 달리 일본과 싱가포르, 한국 등지에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환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

▷코로나19는 뛰어난 ‘위장술’로 인류를 괴롭힌다. 증상이 나타날 때 전염되는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와 달리 잠복기나 무증상 전파력이 강하다. 중국 환자들의 코로나19 감염 데이터 분석 결과, 환자의 14%만 감염 경로가 확인됐고 나머지는 어디서 걸렸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전염력이 강하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자기 존재는 잘 숨기면서 숙주를 옮겨 다니는 능력이 뛰어난 코로나19. 이런 변종에 맞서려면 인간의 과학적 대응은 그 이상으로 치밀하고 전략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팬데믹#코로나19#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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