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구멍 안내고 수술하는 시대 온다…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정확도 ↑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4일 15시 44분


코멘트
미래에는 로봇 수술과 영상 유도 수술이 널리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현실과 영상유도 기술을 활용해 수술하는 미래의 모습을 가상으로 만든 이미지. 왼쪽은 수술용 로봇이다. 자료 출처 고려대 의료원이 만든 ‘미래의 병원’ 영상
미래에는 로봇 수술과 영상 유도 수술이 널리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현실과 영상유도 기술을 활용해 수술하는 미래의 모습을 가상으로 만든 이미지. 왼쪽은 수술용 로봇이다. 자료 출처 고려대 의료원이 만든 ‘미래의 병원’ 영상
수술이라 하면 으레 메스를 손에 든 의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미래에는 외과 의사와 수술에 대한 이런 고정 관념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그때도 장시간에 걸친 개복 수술이 필요한 질병은 남아있을 것이다. 다만 상당수의 수술을 로봇이 ‘집도’하게 된다. 로봇 수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로봇 수술이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사용 중인 수술용 로봇은 어림잡아 70여 대. 게다가 국내의 로봇 수술 실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7년에는 국내 기업이 수술용 로봇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로봇 수술은 비교적 ‘가벼운’ 질병에서부터 시작했다. 심장이나 폐 질환, 혹은 난치성 암에는 아직도 로봇 수술을 시도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복잡한 질병은 여전히 의사가 메스를 들어야 한다. 로봇 수술의 한계인 셈이다.

하지만 로봇 수술의 적용 범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립샘 또는 신장, 방광 등의 암에 대해서는 이미 로봇 수술이 널리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적용 범위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로봇 수술이 진화하고 있는 것. 로봇 수술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진화할까.

본격 로봇 의학 시대 개막

의학자들은 향후 5~10년 이내에 수술용 로봇 기술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환자의 몸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내시경을 넣은 뒤 로봇으로 수술했다. 최근에는 그 구멍의 개수를 한 개까지 줄였다.

앞으로는 몸에 전혀 구멍을 내지 않는 로봇 수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입이나 코, 항문 등으로 로봇을 집어넣는다. 그 로봇이 장기 수술도 할 수 있다. 초보적 수준의 이런 수술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의학자들은 10년 후 이런 수술이 국내에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로봇을 몸 안에 삽입해 수술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손톱 크기의 로봇을 삽입해 질병을 치료하는 동물 실험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삽입된 로봇의 자기장을 이용해 몸 바깥에서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성공하면 그 다음 단계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일단 나노 기술을 활용해 로봇의 크기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수준까지 작아진다. 그 로봇은 혈관으로 들어가 혈액을 채취하고, DNA와 단백질 합성, 유전체 조작까지 시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나노 로봇 수술은 아직까지는 구상 단계다.

로봇 기술이 발달하면 이른바 ‘무인 수술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의사는 수술실 밖의 콘솔(조종 공간)에서 로봇을 컨트롤한다. 수술 보조 인력도 따로 필요 없다.

실제로 미국의 한 병원에서 이런 형태의 무인 수술실이 시험적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물론 이 또한 임상 시험 단계다. 로봇 수술이 더 활성화하면 무인 수술실이 우리 주변에 실제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일단 기술적 측면에서는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다만 비용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질 경우 국내에서도 10년 이내에 무인 수술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나올 수도 있다.

인공 지능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자율적으로 수술하는 날도 올 것으로 의학자들은 기대한다. 혹은 집도의가 생각하는 대로 로봇이 척척 움직이면서 수술을 하는 풍경도 만들어질 수 있다. 더불어 혈관이나 간과 같은 장기를 인공으로 만드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30년 후에는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시뮬레이션으로 최적의 수술 방법 찾아낼 것

최근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를 갖춘 수술실도 늘어나고 있다. 수술을 하면서 직접 고해상도의 영상을 촬영하고, 바로 그 영상을 활용해 수술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수술의 안전도를 높이고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고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의 수술이 아직까지 보편적이지는 않다. 비용의 문제가 크다. 하지만 의학자들은 10년 이내에 이런 방식의 수술이 보편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형광 물질을 이용해 수술 도중에 조직에 혈액이 잘 공급되고 있는지, 장기의 상태는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수술도 일부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런 기술을 ‘형광 영상 유도 수술’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관련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영상 기술과 로봇 기술이 융합되면 훨씬 안전하고 정확하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암 수술을 할 때 지금은 육안으로 암 세포와 주변 조직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두 기술을 접목시키면 화면에 암 세포는 빨간색, 노란색은 암 주변 조직, 초록색은 정상 조직으로 표시된다. 수술이 훨씬 정확해지는 것. 이 기술도 일부 시행 중이다.

미래에는 더 정밀하게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수술의 경우 한 번의 실수로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사전에 정밀하게 시뮬레이션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수술 성공률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할 단계가 아니다. 현재는 주로 의대생의 교육용으로 활용된다.

교육생은 가상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고글을 쓴다. 환자의 몸 상태와 똑같은 3차원 인체가 화면에 뜬다. 수술에 필요한 이미지와 데이터가 속속 화면에 뜬다. 교육생이 팔을 휘저으면 내비게이션 장치를 장착한 로봇이 수술할 부위를 찾아내 메스를 댄다.

시뮬레이션은 3D 컴퓨터 게임과 비슷하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리셋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수술 방법이 도출된다. 이 수술 과정은 저장 장치에 기록된다.

이 시뮬레이션 기술은 현재 수술 데이터를 확보하고 미래 의사들의 수술 능력을 증대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20여 년 후에는 실제 환자 수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의학자들은 전망한다. 이 경우 미리 저장해 놓은 데이터에 따라 수술이 이뤄지기 때문에 성공률과 안전성 두 가지를 모두 높일 수 있다.

로봇수술 200건 돌파 앞둔 강석호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교수

강석호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교수
강석호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교수
로봇 수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만 하더라도 2007년 로봇 수술을 도입하고 12년 만인 지난해 7월 4000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강석호 비뇨기과 교수(48)는 200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봇 수술로 방광을 적출했다. 올 상반기에 누적 200건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팀 혹은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서 로봇 수술 200건을 돌파하는 의사는 강 교수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이다. 현재 이 병원의 수술실장과 로봇수술센터장을 맡고 있다.

강 교수는 로봇 수술의 장점에 대해 “무엇보다 정밀하고 안전하다.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회복 속도도 빨라 환자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개복에서 복강경으로 발전했듯이 앞으로 로봇 수술 시대로 발전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로봇 수술이 만능은 아니라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외형상으로는 로봇이 수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사가 모든 것을 컨트롤한다. 따라서 아무리 로봇 수술이라 하더라도 그 로봇을 다루는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수술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결국 로봇 수술 시대가 되더라도 공장에서 뚝딱 물건을 만들듯이 로봇이 ‘기계적으로’ 수술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는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로봇은 안전한 수술을 돕는 테크놀로지일 뿐이다. 그때에도 환자와 직접 접촉하며 최선의 치료법을 찾는 의사의 역할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중요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로봇수술 유망주 곽정면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곽정면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곽정면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곽정면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48)는 로봇 수술 분야에서 유망주로 꼽힌다. 해외 의학교과서의 신기술과 로봇 수술 분야를 집필하기도 했다. 곽 교수는 4기 미만의 직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85.4%의 5년 생존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이 병원의 대장항문외과장과 국제진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곽 교수 또한 로봇 수술이 앞으로 보편화하겠지만 수술용 로봇이 외과의사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곽 교수는 “수술 도중에 인공지능 로봇이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의사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효율적이고 안전한 수술을 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로봇 수술과 영상유도 수술이 미래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곽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수술은 대부분 의사의 ‘추측’으로 이뤄진다. 조직 뒤쪽에 숨어있는 혈관과 신경을 볼 수 없어 추측을 통해 수술한다는 것. 이 때문에 의사의 숙련도가 수술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로봇 수술과 영상유도 수술이 널리 시행되면 의사가 직접 볼 수 없는 혈관과 신경, 조직 등의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어 안전한 수술이 가능해진다.

10년 혹은 20년 후의 수술실 풍경은 어떨까. 곽 교수는 “인공지능과 디스플레이 기술, 로봇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스마트 수술실이 구축될 것”이라며 “그 결과 수술의 품질과 안전성 모두 향상될 것이며 환자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