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달리기의 기쁨을 배로 늘리는 법[양종구의 100세 건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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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씨(왼쪽)와 이지선 씨가 각각 2008년 베를린 마라톤, 2009년 뉴욕 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푸르메재단의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마라톤 코스 42.195km를 완주했다. 동아일보DB
김형배 씨(왼쪽)와 이지선 씨가 각각 2008년 베를린 마라톤, 2009년 뉴욕 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푸르메재단의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마라톤 코스 42.195km를 완주했다. 동아일보DB
양종구 기자
양종구 기자
필자는 마라톤 담당 기자로 누린 혜택이 많다. 세계적인 마라톤대회 대부분을 현장 취재 했다. 특히 보스턴, 뉴욕, 베를린, 런던 등 이른바 세계 4대 메이저 대회는 모두 직접 봤다. 평소 마라톤을 즐기다 보니 기회가 더 주어졌다. 2004년 보스턴, 2008년 베를린, 2009년 뉴욕은 아예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보스턴 대회에선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지쳐 28km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하는 아픈 경험도 했다. 4km만 더 달리면 보스턴의 명물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인데 아쉽게 버스에 오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 선생과 인연이 있는 보스턴의 마라톤 영웅 존 켈리(2004년 10월 작고)를 인터뷰하는 데 성공한 일로 쓰라린 속을 달래야 했다.

베를린과 뉴욕에서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다. 두 대회에선 장애인 도우미 레이서로 참가했다. 장애인 재활 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던 푸르메재단이 ‘장애인 희망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필자를 초청해 이뤄진 일이었다.

2008년 9월 28일 독일 국회의사당 뒤 광장을 출발해 베를린 시내를 돌아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들어오는 베를린 마라톤 코스는 환상적이었다. 표고차가 크지 않고 나무가 줄지어 선 도로를 달릴 때엔 숲속을 뛰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 대회를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필자가 보조를 맞춰 주었던 김형배 씨(당시 49세)가 당시 보여준 사투에 가까운 노력이었다. 군대에서 폭풍지뢰를 밟아 왼쪽 무릎 밑이 없는 장애를 갖게 된 김 씨에게 달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을 요구했다. 의족에 의지해 달리던 그의 얼굴은 10km를 넘기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충격이 계속되자 20km를 넘어설 즈음에는 의족과 맞닿은 살이 터졌고,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죽고 싶다”를 반복하면서도 “힘들면 걸어가자”는 제안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5시간41분05초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2009년 11월 2일 열린 뉴욕 마라톤에서는 전신의 55%에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당시 31세)가 파트너였다. 피부가 손상되면 피부호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오른다. 예상대로 이 씨는 1km도 채 못 가 “못 달리겠다”며 걷기 시작했다. 10km를 지날 무렵 이 씨는 “못 가겠어요. 먼저 가세요”라고 했다. ‘함께 포기할까, 혼자 달릴까’를 고민하던 필자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언제 뉴욕을 달려 보겠나’라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5시간여 만에 결승선에 도착한 뒤 이 씨를 초조히 기다렸다. 2시간여가 지난 뒤 갑자기 큰 환호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씨가 7시간 22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10km도 걸어본 적이 없는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 있었지만 응원해주는 시민들을 보며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걸었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하는 그를 보면서 대견한 감정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마라톤은 특별한 스포츠다. 42.195km를 완주하는 일은 달리는 사람이 어떤 뜻을 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건강, 기록 단축, 자신과의 싸움 등 개인적인 의미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김형배 이지선 씨처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기쁨과 감동은 몇 배로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세계적인 마라톤대회는 대부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기부프로그램(Charity Program)을 가동한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 이후 각종 마라톤대회에서 ‘1m 1원’ 캠페인이 인기를 끌었다. 1m를 달릴 때 1원을 기부금으로 내는 형식이었다. 풀코스를 달리면 4만2195원을 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 이벤트에 참여하는 참가자가 크게 줄었다고 해 아쉬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푸르메재단의 경우 최근 러닝크루 ‘MRTK’로부터 ‘런도네이션’이란 이름으로 230여만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이 단체 회원 350여 명이 ‘1km=100원 저금통’을 만들어 8개월 동안 매일 모은 돈이라고 한다. 이들의 런도네이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2015년 이후 4년여 만에 마라톤 풀코스에 다시 도전할 계획을 세운 필자도 푸르메재단에 ‘1m 1원’ 형식으로 기부를 할 계획이다. 마라톤을 즐기는 독자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다.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또 다른 달리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 좋은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베를린 마라톤#장애인 희망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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