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같은 학범슨의 여우 같은 묘수… “선수 선발 기준은 없다”

  • 뉴스1
  • 입력 2020년 1월 29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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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대한민국 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하고 있다. © News1
김학범 대한민국 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하고 있다. © News1
호랑이 이미지가 있는 김학범 감독은, 실제 접해보면 의외의 면들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근엄할 것 같으나 장난도 잘치고 과묵할 것 같지만 말수도 많다. 예상과 같은 모습도 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지독할 정도고 화가 났을 때는 부릅뜨는 눈빛만으로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유연한 상남자’ 쯤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디어와의 소통 역시 비슷하다. 언뜻 다가가기 힘든 스타일로 보이나 먼저 다가와 농담도 걸 정도로 스스럼없는 지도자다. 농담도 즐겨서 대화 중간중간 웃음꽃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베테랑이라 불필요한 말로 잡음을 만들지 않는 노련함도 지녔다. 그러면서도 또 말을 해야 할 때는 주저 없다.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고 지난 28일(이하 한국시간) 귀국하던 자리에서도 김학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나왔다.

대표팀은 지난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전에서 연장후반 8분에 터진 천금 같은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우승과 함께 대표팀은 도쿄올림픽 본선 출전권도 획득, 9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금자탑도 추가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입국장에서 김학범 감독은 “우승이라는 것은 언제나 기쁜 것 아니겠는가”라고 웃은 뒤 “돌아보면 모든 경기가 고비였던 것 같다. 고맙게도 선수들이 잘 따라준 결과다. 선수들과 힘을 합쳐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더 값진 것 같다”고 기쁨을 표했다.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자리였으나 마냥 축하만 하고 끝나진 않았다. 이제 김학범호는 궁극의 지향점인 2020 도쿄올림픽을 향한 준비에 돌입해야하고, 따라서 다소 이른 감이 있음에도 본선과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다. 김 감독도 물음을 막지 않고 답했다.

본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에 대해 김학범 감독은 “이건 좀 기다려 달라. 올림픽 조 편성이 끝나야 윤곽이 나올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떤 선수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려야 추릴 수 있다”면서 “(조편성이 확정되는) 4월은 되어야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상이 누구냐는 질문이 더해지자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는 없다”고 웃은 뒤 “한국 선수는 모두 해당된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그러다 나중에 민감해질 수 있는 질문이 나오자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김 감독은 도쿄올림픽 최종엔트리를 선발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기준을 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답을 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워 놓은 덫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현명함이었다.

김 감독은 “기준을 정해 놓으면 유연성이 떨어진다. 내가 필요한 선수인데도 (그 조건과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발탁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를테면,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내가 필요한 자원이면 데려간다.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 팀에 필요한 선수를 뽑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일종의 학습효과로 생긴 ‘유연한 답변’이었다. 과거 대표팀 감독들이 큰 고민 없이 제시했던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온다”는 평범한 조건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여론의 ‘꼬투리’로 작용했던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가능하다.

동시에 소신이기도 했다. 김학범 감독은 “이번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리그에서 더 많은 경기에 나가는 선수가 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축구와 어울리지 않으면 발탁하지 않았다”는 뜻을 가감 없이 밝혔다.

본선 엔트리 발표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비행의 피곤함까지 고려했을 때 “지금 이야기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상남자 김학범 감독은 호랑이처럼 당당히 답했다. 그러면서도 여우의 꾀를 섞었다.

순간적인 기지인지 미리 준비한 답변인지까진 읽기 어렵지만 묘수가 나왔다. ‘선수선발 기준 없다’라는 발언과 함께 김학범 감독은 꽤 넓어진 인재풀을 마련한 모양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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