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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소프라노 신영옥 “지금도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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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소프라노 신영옥 “지금도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

유윤종 문화전문기자입력 2020-01-23 15:35수정 2020-01-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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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신영옥은 무대 위 동작과 자세의 ‘교과서’로도 인정받고 있다. 신영옥 씨 제공
“방금도 호텔방에서 도니체티 ‘루치아’의 아리아를 부르다 왔어요. 하루라도 안 하면 제소리가 안나요. 지금도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죠. 후후.”

소프라노 신영옥(59)이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2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박성현 지휘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토스티 ‘세레나데’, 카탈라니 오페라 ‘라 월리’ 중 ‘나 홀로 떠나네’ 등을 노래한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서울 중구 소공로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1990년 4월 3000여 명이 도전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그해 12월에 로시니 ‘세미라미데’의 아제마 공주 역으로 ‘메트’에 데뷔했다. 이듬해 1월 라디오 중계를 겸한 메트의 베르디 ‘리골레토’에서 여주인공 질다로 깜짝 출연하면서 월드스타 대열에 올랐다.


노래 뿐 아니라 등장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모으는 무대 위 자태도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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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엔젤스와 선화예중·고를 다니면서 무용을 배웠잖아요. 큰 도움이 되었죠.”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시동 오스카 역은 이 배역 자체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을 받았다. “까불까불하면서 계속 뛰어다니는 역이죠. 몸집이 작고 가벼운데다 목소리도 가벼운 목소리여서 오스카에는 딱 맞았어요.”

오스카 역은 1993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정명훈 지휘로 처음 불렀다.

“제가 가니까 혜경 언니(홍혜경)이 비제 ‘카르멘’의 미카엘라 역을 하고 있었고, 제가 끝나고 나올 때 보니 수미(조수미)가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랭피아 역을 시작하더라고요. 멋진 시절이었죠.”

200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밀레니엄 공연에도 세 한국인 소프라노가 모두 무대에 올라 한 곡씩 불렀고 갈채를 받았다.

그에게 ‘노래 인생 최고의 때’를 물어봤을 때도 오스카 얘기가 나왔다. 1997년 그는 메트에서 벨리니 ‘청교도’ 여주인공 엘비라 역으로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대의 명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베르디 ‘운명의 힘’을 취소하고 ‘가면무도회’ 남자주인공 레나토 역을 맡으면서 신영옥을 불렀다.

“꼭 내가 오스카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더군요. 청교도를 취소하고요. 알겠다고 했는데 ‘청교도’에 함께 캐스팅 된 다른 소프라노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래서 둘 다 했죠.”

무대 뒤에서 유명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이 “당신 참 용감한 사람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때를 그는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회상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신영옥은 무대 위 동작과 자세의 ‘교과서’로도 인정받고 있다. 신영옥 씨 제공
그가 본 파바로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에서 테너 혼자 무대로 나가 유명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르죠. 무대에 나가기 직전의 그는 항상 눈에 띄게 부들부들 떨었어요. 그런데 무대에만 오르면 멋진 미소와 빛나는 소리가 쏟아지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의 목소리가 특별히 크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오스카 역은 테너 레나토 왕 옆에 붙어서 노래하는 장면이 많죠. 바로 옆에서 듣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무대 사방에서 울리는 것 같았어요.”

파바로티는 신영옥의 은사인 소프라노 클라우디아 핀차와 ‘절친’이었다. 파바로티가 췌장암으로 투병중일 때도 문병을 갔다.

“안타까울 정도로 초췌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나왔어요.”

최근 개봉한 영화 ‘파바로티’는 아직 보지 않았다.

그를 여기까지 끌고 온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잘한다고 엄마가 칭찬하는 게 좋았어요. 엄마의 격려가 없었으면 난 아무 것도 없죠. 엄마가 좋아하면 ‘남몰래 흐르는 눈물’ 같은 남자 노래도 막 불렀어요.”

어머니는 그의 성공을 본 직후인 1993년 별세했다. 신영옥은 TV 쇼에 나와 팝송 ‘나의 어머니’(Mother of mine)를 부르며 화장이 다 지워질 정도로 눈물범벅이 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칭찬과 격려가 그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니스에서 모차르트 ‘양치기 임금님’을 하는데, 연출가가 대본을 영어로 번역해서 낭독하면서 연기 연습을 하도록 했어요. 제가 다 외워서 열심히 했더니 이 사람을 본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런 식의 칭찬이 좋아서 더 열심히 한 거죠.”

2016년 12월 그는 경주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콘서트 석 달 전 경주지진이 일어났다. “열심히 부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많은 청중이 저를 기다리시더군요. ‘지진 나고 장사도 안 되고 우울한데 모처럼 힐링이 되었다’고들 얘기해 주셨어요. 울컥했죠.”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소프라노 신영옥은 무대 위 동작과 자세의 ‘교과서’로도 인정받고 있다. 신영옥 씨 제공
이제 어머니의 격려는 아버지가 대신한다.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으셔요. 그래서 제가 서울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늘 그의 무대를 보러 오고, “왜 그 노래에서 팔을 올렸느냐” 등 일일이 ‘코치’를 한다. 가끔은 갈라 무대에서 “아버지 어디 계셔요?” 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문득 “올해 동아일보 100주년이죠? 축하드려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1992년 3월 9일. 날짜도 또렷해요. 내 방에 포스터가 걸려 있거든요. 다른 건 하나도 없고 그 포스터뿐이거든요. 동아일보 주최로 첫 고국 리사이틀을 했죠.”

그는 동아일보 주최로 지난해 3월 열린 제15회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부문)에서도 심사위원장을 맡아 시상식장에서 심사평을 발표하면서 당시의 일을 회고했다.

신영옥은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노래 연습만 매일 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까지는 복싱과 검도에 빠졌다. 검도는 특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검을 내려칠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복근에 힘을 주어야 하잖아요. 성악가에겐 참 좋은 운동이에요.”

그런데 그만 무릎을 다쳤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팔도 흔들고 온갖 동작을 하면서 걷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600㎉씩 소모돼요! 매일 발성과 노래 연습을 하듯이, 운동도 안 하면 무대 위에서 바로 티가 나요.”

언제까지 노래를 할까?

“내 창법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계속 하면, 뭐,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죠. 후후.”

그의 목소리는 가볍고 순수하고 맑다.

“더 무거운 역할에 도전하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각자의 영역이 있는 법이죠. 무리해서 도전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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