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 리용호 경질, 강경파 리선권 외무상에…김정은 속내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9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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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향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통’ 리용호 외무상을 사실상 경질하고 대표적인 강경파 리선권을 외무상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로 2년간 이어온 북-미 협상 전략의 전면 전환에 나섰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었던 외무성 라인을 문책하고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전무한 리선권을 발탁한 것은 북-미 비핵화 대화 중단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점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내 군부 강경파의 재부상을 두고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 강화를 통한 본격적인 ‘벼랑 끝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미국통 외무상 최단기간 경질…후임엔 군부출신 막말 강경파

북한의 외교정책을 총괄해온 리용호의 교체 가능성이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이 소집한 마라톤 노동당 전원회의 직후부터다. 전원회의 당시 주석단에 포함됐던 리용호가 지도부 인선이 마무리된 회의 마지막 날 촬영된 김 위원장과의 단체 기념사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 리용호 경질은 지난 주말 북한이 북한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 대사관에 외무상 교체 사실을 통보하면서 확인됐다.

북한의 외무상 교체는 2016년 김 위원장이 36년 만에 제7차 노동당대회를 주재하면서 국무위원장에 추대된 직후 리수용에 이어 외무상으로 승진한지 4년 만이다. 2년가량 외무상을 지내다 국제부장으로 승진한 리수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단명 외무상인 셈. 북한 외무상이 통상 5년에서 10년가량 장기 재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북-미 대화 교착의 책임을 물어 문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리선권이 리용호를 대신해 외무상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 대북 소식통들은 “매우 이례적인 충격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협상 실무진 문책에 이은 외교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선출되지 못한 리선권이 신임 외무상에 임명된 것은 외교 엘리트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 대외 공작기관인 정찰총국 출신으로 남북군사실무회담 대표를 맡기도 했던 리선권은 리용호가 외무상에 임명됐을 당시 차관급인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남북 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해 막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특히 같은 해 10·4선언 기념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겐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겨선 안된다”, 고위급회담에 늦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에겐 “시계가 주인 닮아서 관념이 없다”고 말하는 등 안하무인에 가까운 언행을 이어간 강경파로 통한다.

● 北 핵보유국 지위 강화하며 정면돌파전 나설 듯

북한의 전격적인 외무상 교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로 제시한 정면돌파전이 본격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미 대화의 문을 닫고 미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것.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외교보다는 정면돌파전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의 진전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군부 이익을 대변해온 리선권의 외교정책을 총괄하게 되면서 핵 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북한 군부의 입김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4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에서 물러난 이후 외무성 출신들의 부상과 함께 뒷 선으로 밀려났던 군부 출신들이 부상하면서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중단 등 고강도 도발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개별관광 추진 등 독자적인 남북협력 구상을 내놓은 가운데 이번 인사로 남북관계를 둘러싼 먹구름도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한국 무시 기조는 ‘하노이 노딜’ 이후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강경파 리선권을 외무상에 앉힌 것은 한국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가겠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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