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집회 日 양심세력들 “500회까지 해결 못해 韓 피해자에 미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7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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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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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덕이가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

17일 오전 8시 반 일본 도쿄 외무성 앞.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91)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죄 한 마디 없이 75년이 흘렀다’는 현수막을 든 50여 명의 사람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가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했다.

매주 금요일 외무성과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도쿄 지요다구)에서 열리는 이 집회의 이름은 ‘금요행동’. 한국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해 일본 시민단체 회원 및 변호사 등 일본의 ‘양심 세력’들이 2007년부터 열어온 이 집회가 이날 500회를 맞았다. 금요행동은 한국의 ‘수요시위’에서 착안한 집회로 근로정신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일본의 가해 역사를 반성하자는 취지로 13년 째 열리고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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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500회 집회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일본 시민단체 회원 뿐 아니라 양 할머니를 포함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광주소송 변호단’ 등 한국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도 참석, ‘한일 연대’ 형태로 진행됐다.

아베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 앞으로 면담 요청서를 보낸 이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직접 방문해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 할머니가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관계자를 만난 것은 약 10년 만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그동안 법정 소송 중이라며 피해자 측과 면담을 피해왔다.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측과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75년이 지나도 사죄가 없다”며 “올해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나의 억울함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500회 동안 집회를 이끌어온 일본의 양심 세력 상당수는 70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몸살이 나 연신 콧물을 흘리는 사람은 물론이고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참가자도 있다. 지난해 2월 일본제철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 때는 우익 세력이 확성기로 “몸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그럴수록 “일본의 가해 역사를 피하면 안 된다”며 한국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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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려움 속에서 집회를 이끌어 온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단체’ 공동대표는 “한국 시민단체들의 활약에 작게나마 영향을 준 것 같아 기쁘다”며 “그 단체들 덕분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단체의 데라오 데루미(寺尾光身) 공동대표는 “500회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오히려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 돼 금요행동을 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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