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 약속 안 지켜…” 98세 노인, 아들과 법정 싸움 벌인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5일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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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춘천지법 312호 법정. 귀가 어두운 98세 노인 A 씨는 재판부가 자신에게 내린 패소 판결도 알아듣지 못했다. 법정을 나와 주위에서 큰 소리로 알려준 뒤에야 2심에서도 자신이 패소했음을 알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춘천지법 제1민사부(부장판사 신흥호)는 이날 A 씨가 셋째 아들 B 씨(56)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A 씨는 “22년 전 땅을 증여받은 아들이 나를 부양하고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땅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A 씨 부자의 사연은 22년 전 시작됐다. 1998년 1월 A 씨는 아들에게 강원 평창군 용평면의 임야 1만6264㎡를 증여했다. 이 땅은 A 씨의 아내와 조상들의 묘가 있는 선산이다. A 씨는 당시 B 씨에게 증여하는 조건으로 ‘이 땅이 선산인 만큼 절대 팔지 않고 자신을 잘 부양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아들은 증여 초기 일부 생활비를 지원했을 뿐, 이후에는 전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선산까지 팔았다”며 2018년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2월 춘천지법 영월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증여 당시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타인에게 매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증여 당시 약속을 입증할 만한 각서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또 A 씨는 B 씨가 자신에게 땅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위장매매한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6월 B 씨가 사업 동반자인 C 씨(47·여)에게 이 땅을 실 거래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인 1300만 원에 매매한 것이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B 씨와 C 씨는 이 땅에서 함께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조정 차원에서 C 씨에게 산 가격의 두 배에 땅을 팔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 가격에는 안 된다. 10억 원이면 팔 수 있다”고 답했다. C 씨는 그동안 산을 깎고 하우스 시설을 설치하는 등 투자를 많이 해 땅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B 씨는 “아버지가 증여 당시 했다는 약속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동안 조상들 묘를 공들여 관리해 왔다. 돌아가시면 그 땅에 아버지를 모실 생각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어려운 형편”이라고 밝혔다.

A 씨는 “자신의 땅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 땅에 나를 모실 수 있겠냐”며 “이리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땅을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법정 안에서 약 2m 거리를 두고 앉아있던 부자는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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