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운동권 민주주의, 운동권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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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회에는 건전한 지식층 존재
현 정부는 이념 앞세우는 운동권이 장악
권력국가로 후퇴하는 조짐도 곳곳에
민주주의 정부라면 국민 뜻 따라야… 권력에 의한 억지 평등은 사회악일 뿐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일을 할 수 없다. 정신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중환자는 생명을 잃을 수 있듯이, 사회 전체가 중병에 빠지면 민족적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개인의 질병은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사회적 질환은 스스로가 발견, 진단, 치료를 책임져야 한다. 사회의 경제적 건전성을 위해서는 중산층이 필요하듯이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도층이 필수적이다. 그들이 국민의 윤리적 질서와 장래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영원하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로마도 종말을 맞았다. 역사가들은 도덕성의 붕괴가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후에는 공산주의 소련이 세계를 영도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후진사회로 전락했다.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구한말의 우리 지도층 사태를 연구한 역사가들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보다는 우리 민족이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진단한다. 정신적 중병을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나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 정치, 경제, 문화는 세 축을 이루고 있다.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는 인물들도 세 분야의 정신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건전한 상식을 갖춘 지성인들이 대중을 대신하고, 그 수가 많아지면 지도층을 대변하는 책임을 담당하게 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란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건설적인 상식이 국론을 대변하게 된다.

우리 사회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주간에는 한 원로 좌파 정치학자가 우리 정권과 정부를 ‘운동권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런 명칭은 백과사전에도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 있을 때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 지냈기 때문에 그 세대가 현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는 인사 절차를 보면서 문재인 정권은 ‘운동권 정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주주의 또는 민주적 정치, 경제의 방향과 과제는 엄연히 존재한다. 반(反)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역행하는 사회악이 된다. 민주정치의 제1조건은 국민을 위한 정부이며, 그 정권은 국민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운동권 출신이 주체가 되고 국민은 그 정책에 추종하든가 아니면 반대해야 하는 전제조건 밑에 놓였다. 대통령이 취임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버리고 운동권 중심의 정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자신들에게는 부정과 위법의 DNA가 없다고까지 호언했을 정도다. 지금 국민들은 그 결과의 선악을 따지기보다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해 주기를 바란다. 장기화되면 또 다른 적폐가 되고 그 적폐가 병폐로 남게 될까를 걱정한다.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법치사회를 권력국가로 후퇴시키지 말고 정신적 가치를 구현하는 질서사회로 승화시켜야 한다. 현 정부는 법을 먼저 만들어 놓고 권력으로 그 법을 추진시키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법도 그렇고, 정규직 강요도 같은 성격이다. 그런 방법은 근로자나 평등사회를 위하는 순리적인 절차가 아니다. 전교조의 주장이 백년대계를 위한 인간 교육의 전부가 못 된다. 대학 교육의 통제는 100년 후의 민족적 희망을 병들게 할 뿐이다. 법치를 위해 국민들의 윤리의식과 도덕관념까지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정의만 있고 사랑의 질서가 배제되면 사회는 중병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적폐 청산의 결과를 우려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제기해온 문제가 짧은 기간에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어진 선결 과제는 정부와 국민의 역사적 선택이다. 한 방향의 선택에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휴머니즘에 근거를 둔 민주정신에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공유하는가, 함이다. 지금은 우리가 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육성하는 선택이 바람직스럽다. 주변의 큰 나라들 사이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성장과 번영이 앞서야 한다. 인간애가 있는 곳에는 자유와 조화로운 평등의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택한 길과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가 선호하는 역사의 길 중 하나이다. 공산국가식의 권력에 의한 평등 이념은 난치의 사회악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운동권#민주주의#법치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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