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장발장’ 배고픔에 우유 훔친 父子 사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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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6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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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경위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먼저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싶었다.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MBC뉴스 캡처
이재익 경위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먼저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싶었다.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MBC뉴스 캡처
배고픔을 참지 못한 부자(父子)가 함께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치다 적발됐다. 현장에 출동한 인천 중부경찰서 이재익 경위는 ‘현대판 장발장’의 안타까운 모습에 은촛대 대신 따뜻한 국밥을 내밀었다.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벌어진 건 이달 10일. A 씨(34)와 그의 아들 B 군(12)이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우유 등 1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직원에게 붙잡힌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이 경위는 부자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 경위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범행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안 했을 거다. CCTV 바로 밑에서 가방에 주섬주섬 담는 장면이 녹화됐고 직원이 그걸 발견했다. 배가 고파서 훔쳤다고 하더라. 이 말이 저희한테는 범행 동기에 해당된다. 가족 관계, 직업, 소득 이런 것들을 파악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내와 이혼한 A 씨는 모친, 두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 경위는 “4인 가족인데 아버지는 6개월 전에 실직을 해서 지금까지 직장이 없는 상태였다. 당뇨병하고 갑상선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기사를 그만뒀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자의 딱한 사정에 마트 사장은 처벌 의사를 철회 했다. 초범이고 피해 금액이 1만 원에 그쳤기 때문에 이 경위도 훈방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 경위는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국밥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먼저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싶었다.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구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부자는 특별한 말을 하진 않았다. 이 경위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조용히 국밥 그릇을 비우고 있는 이들에게 한 시민이 다가왔다. 시민은 조용히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현금 20만 원이 든 돈봉투였다.

이 경위는 “저도 그분이 누군지 모른다. CCTV로 확인해보니 마트에서부터 일련의 과정을 다 지켜보셨더라. 무슨 일일까 지켜보신 것 같다. 그리고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와서 20만 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말없이 놓고 나가셨다”고 밝혔다.

눈앞에 현금 20만 원 놓였지만 아들은 곧바로 시민을 쫓아갔다. 돈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러자 시민은 말없이 뛰어 사라졌다. 이 경위는 “시민 분을 찾기 위해 마트 사장님한테도 확인을 해봤다. 근데 그날 물건을 구입한 내역이 없는 걸로 보이고, 아는 분 중 인상착의가 비슷한 분도 없었다. 신원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식사를 마친 부자를 데리고 인근 주민센터로 향했다. 이 경위는 “아버지한테 근로 의욕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굉장히 강력하게 일을 하겠다고 의사를 피력하셨다. 그런 내용을 사회복지사분한테 말씀드리고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다는 그런 답을 듣고 왔다”고 했다.
부자와 이재익 경위의 이야기는 13일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졌다. 그러자 인천 중부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엔 이 경위의 행동을 칭찬하는 글이 쏟아졌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방법을 묻는 시민들도 많았다. 인천 중부경찰서 홈페이지 캡처
부자와 이재익 경위의 이야기는 13일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졌다. 그러자 인천 중부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엔 이 경위의 행동을 칭찬하는 글이 쏟아졌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방법을 묻는 시민들도 많았다. 인천 중부경찰서 홈페이지 캡처

이들 부자와 이 경위의 이야기는 13일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반에 알려졌다. 그러자 인천 중부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엔 이 경위의 행동을 칭찬하는 글이 쏟아졌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방법을 묻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 경위는 “제가 아버지한테 신신당부했다. ‘하늘이 준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 봉양하고 두 아들 양육하는 데 꼭 보탬이 되는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행이 되는지 한번 지켜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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