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이라크 민심 ‘反이란 불매운동’ 번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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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부패에 시위 나선 국민들… 이웃 강국 이란의 내정간섭에 불만
이란산 제품 거부운동 확산… 이란 주도 ‘시아파 벨트’ 균열 조짐

올해 10월부터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져 450여 명이 사망한 이라크에서 이란산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신문 앗샤르끄 알아우사트에 따르면 이라크에선 지난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란산 제품 불매 운동이 시작됐다.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이란의 정치·안보 개입에 불만을 나타내며 경제 활동에서도 반이란 행보에 나선 셈이다. 이들은 특히 이란에서 생산된 유제품 등 각종 생활필수품 구매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이란산 물품을 수입하는 도매업체에는 재고가 쌓여가고 있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란산 제품을) 썩게 놓아두자’는 해시태그도 유행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란에 비해 산업 인프라가 낙후됐고, 오랜 기간 전쟁을 겪어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안 좋다. 이라크보다 산업화가 진전됐지만 역시 서방의 경제제재에 시달려온 이란 역시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주된 수출 시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런 양측의 필요가 맞물려 그동안 값싼 이란산 유제품과 공산품은 이라크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급됐고, 큰 인기를 누려왔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이란의 비(非)석유 분야 대(對)이라크 수출은 약 60억 달러(약 7조1600억 원)에 이르렀다. 경제적 가치가 커 이란에선 자신들이 시아파 정치인과 민병대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온 이른바 ‘시아벨트 국가’(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중에서도 이라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 메시지와 더불어 ‘이란은 떠나라’ 같은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시위대는 지난달 나자프와 카르발라의 이란 영사관에도 불을 질렀다. 친(親)이란계 인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장악한 만큼 이라크에서 반이란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 제품 불매운동은 이슬람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라크 내 시아파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 향후 세를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역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도 반이란 정서가 강하다. 또 최근 이란 전역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땐 “국민은 배고픈데 왜 정부는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다른 나라의 무장정파를 지원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반이란 불매운동#이라크#시아파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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