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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북미 만남의 순간 감동적이었는데…그 많던 사진은 가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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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북미 만남의 순간 감동적이었는데…그 많던 사진은 가짜였나

변영욱기자 입력 2019-12-10 15:54수정 2019-12-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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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사람들이 특히 사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사진기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순간이 선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연예인들의 열애 인정 기자회견을 찍을 때면, 두 사람의 달콤한 눈빛을 찍기도 하지만 서로 고개를 돌리는 어색한 순간을 포착해 두기도 했었다. 나중에 결별 뉴스가 나올 때 다시 기자회견을 하지는 않을 거니까. 그래서 요즘 연예 기획사들은 사진기자들의 접근을 막고 아예 자체 촬영한 보도자료용 사진을 배포한다.

최근 여의도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를 촬영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주최 측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물론 모든 매체가 허가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정상적인 욕망을 거스르고 취재원의 불편한 순간을 포착하려고 기를 쓰는 사진, 영상기자들이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직업을 선택한 순간 이미 피할 수 없는 ‘원죄’일 수도 있다. 그래도 카메라를 꼭 쥐고 현장을 지켜보는 이유는 사진이 진실을 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수첩에 메모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대학생들의 필기도 이제는 이미지 파일로 대체됐다. 일상생활에서 기억의 보완재로 사용되는 영상 이미지는 신문과 방송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사건에서 이제 사진도 믿을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년간 북미, 남북간의 악수와 포옹이라는 화해의 이미지가 넘쳐났는데 다시 북한이 발사체를 쏘는 사진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본 이 이미지들은 거짓이었을까? 남북과 북미 만남은 실제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외교 전쟁의 현장이었지만 이미지는 지나치게 축제처럼 기획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감동은 순간이었지만 국제 관계는 냉엄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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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동영상에 대해서 법원은 본인이 맞다고 밝혔고 비록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이지만 이를 본 시민 대부분도 화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누군가 기록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본인은 부인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옷을 바꿔가며 서류 더미를 옮기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은 증거를 인멸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받아들여져야 했지만 지지자들은 이를 애써 부인했다. 법은 결국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정 교수를 구속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방식에 의지해야 하는 걸까 고민된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역시 사진기자들의 중요한 촬영 대상이었다. 현장에서 가늠한 참가 인원의 숫자는 신문과 인터넷에 함부로 쓸 수 없었다. 한쪽이 100만 명이라고 하면 다른 쪽은 200만 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상대방의 숫자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수십 년간 집회 취재를 해왔던 사진기자들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숫자였다.

이미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이미지의 주인들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기레기’ ‘가짜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그런 공세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생산 과정과 맥락을 함께 살핀다면 진짜와 가짜 이미지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성추문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의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대학교 건물의 CCTV가 공개된 것 역시 누군가의 적극적 제보나 취재의 결과이므로 역시 의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영상이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세월호가 다른 사고와 달리 아직까지 가슴을 아프게 후비는 것도 현장 화면을 다 지켜본 사람들의 죄책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이 감시되는 디스토피아를 걱정했지만 거리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오히려 거짓말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부정하는 기법이 발달하곤 있지만 그래도 사진과 영상 등 기계가 기록한 이미지는 진실을 분명하게 증명할 것이고, 투명 사회를 만드는데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내년에도 사진을 매개로 세상과 이야기할 사진기자의 연말 소회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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