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노태우 장남, 5.18 유족에 사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2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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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의) 아픔과 희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주는 터전이 됐습니다.”

5일 오후 2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53)가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 어머니 집을 찾아 방명록에 이런 글을 적었다. 그는 올 8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데 이어 두 번째로 광주를 찾아 사죄했다.

그는 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 행불자 박광진 군(당시 5세)의 아픈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또 5·18 당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에게는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월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오월 어머니 집은 5·18유족들의 열린 쉼터이자 교육관이다.

재헌 씨는 유족들을 만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쓴 탈대일본주의라는 책을 선물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일제 만행을 사죄했는데 재헌 씨는 “이런 마음으로 왔다.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정현애 오월 어머니 집 관장(67) 등 유가족 3명을 만나 40분간 대화했다. 유족들은 “사죄를 하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야기 해 달라”, “5·18진상규명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재헌 씨는 “아버지는 현재 거동이 불편하고 사람도 못 알아보신다. 하지만 건강하셨을 때 광주 시민들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하셨다”며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하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들과 비교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헌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2년 전부터 매일 아버지 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도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재헌 씨는 오월 어머니 집 방문이 끝난 뒤 “아버지의 회고록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앞서 이날 오전 11시 반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 유품이 있는 기념전시관을 20분 동안 둘러봤다. 기념전시관 방명록에는 ‘큰 뜻을 이어 가겠습니다’고 적었다. 그는 5월 단체 관계자 1명을 만나 사과했다. 5월 단체는 “재헌 씨가 공식사과와 진상규명 협조 등을 통해 사죄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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