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사주지만, 숙제는 네 책임이야”[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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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뭐든 후다닥 대충 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엄마, 나 피자 사줘”라고 말했다. 엄마는 “숙제 끝내면 사줄게”라고 했다. 아이는 숙제를 시작하긴 했는데 머릿속의 80%가 피자 생각이다. 숙제를 하면서 “피자 꼭 사줄 거지? 사줄 거지?” 연거푸 묻는다. “꼭꼭!” 다짐도 받는다. “피자 먹고 하면 더 잘할 텐데”라며 혼잣말도 한다.

엄마가 보다 못해 엄한 표정으로 “너 빨리 안 해?” 했다. 아이는 “알았어요”라며 후다닥 했다. 그런데 아이가 푼 문제를 채점하니 다 틀렸다. 엄마가 다시 하라고 했다. 아이는 숙제만 하면 피자를 사준다고 하더니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며 난리를 친다. “그러게, 누가 다 틀리래?” 하니 아이는 “그래도 했잖아” 하고 우긴다. 엄마는 제대로 하기 전에는 안 사준다고 으름장을 놨다. 아이는 울면서 문제를 다시 풀었다. 그런데 그 사이 피자집 영업시간이 끝났다. 아이는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엄마 때문에 피자도 못 먹었어” 하면서 악을 쓰며 운다.

보통 후다닥 대충 하는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 내지는 숙제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다음 것에 대한 생각이 충동적으로 떠오른다. 그것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조급하다. 그래서 완벽하게 해내고 그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빨리 해버리고, 저걸 빨리 해야 하는데…’가 된다. 이것을 ‘인지충동성’이라고 한다. 인지충동성이 강한 아이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키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상을 준다고 하면 그 생각에 공부를 못 하겠했고 하는 아이도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네가 숙제를 하든, 안 하든 피자는 사줄 거야. 먹고 싶다고 하니까 사줄 수는 있어. 그런데 지금 피자를 시키면 먹느라 시간이 다 가서 숙제를 못 하잖아. 숙제는 피자를 사주든, 안 사주든 네가 해야 하는 책임감인 거야.”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하면 “하기 싫을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해야 돼. 모든 일을 하기 좋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야”라고 한다. 아이가 알았다고 하고 숙제를 시작하면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제대로 하면 빨리 끝날 거야. 제대로 안 하면 다시 할 수밖에 없어. 엉터리로 하게 할 수는 없거든. 그렇게 다시 하면 시간이 두 배로 걸려”라고 미리 얘기해준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선택을 제시한다. “1번, 엉터리로 해서 또 해야 되고 피자도 못 먹고 못 논다. 2번, 딱 마음먹고 빨리 하고 피자도 먹고 놀 시간도 많아진다. 둘 중 어떻게 할래?” 대부분 2번을 고른다. 그러곤 “근데, 2번이 뭐였더라?” 물어 아이 입으로 다시 되뇌게 한다. 아이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하기 위해서다.

“빨리 숙제를 하고”, “그러면 뭐가 생기지?” 하고 확인한다. “피자도 생기고요.” “그렇지. 놀 시간은 많아질까? 짧아질까?” “많아져요.” “숙제를 빨리, 제대로 해서 피자도 먹고 노는 시간도 많아진다. 그럼 2번으로 한다는 거지?” 이렇게 확인해줘야 자기 개념이 생긴다. 그런데 때로는 “3번은 없어요?”라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 “3번은 뭐 하고 싶은데?” 하고 물으면 대부분 “숙제는 안 하고 피자는 먹는다”라고 한다. 그때는 장난스럽게 “에이, 그건 치사한 거야”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런데 2번이 뭐라고?” 아이가 “숙제 빨리 하고요, 한 번에 제대로 끝내면 놀 시간도 많아지고 피자도 사주신다고요”라고 하면 “오케이!”라고 기분 좋게 대답한다. 후다닥 대충대충 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자기 개념이 조금씩 생기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 아이들은 생활 곳곳에서 대충대충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을 모두 한꺼번에 잡아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중요한 것 한 가지만 확실하게 가르치고 나머지는 눈감아주자. 만약 국어 숙제를 확실하게 다시 시켰다면 미술은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이때도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 얘기해 둔다. 아이가 한 가지 색으로 전부 칠했으면 “너 이거 빨리 끝내려고 했구나”라고 말한다. 아이가 이유를 대며 “아니에요, 창의적으로 빨간 얼굴을 표현한 거예요” 하면 “그래” 하고 들어준다. “네가 창의적으로 한 거라면 상관없는데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칠했으면 곤란하지” 하는 정도로만 짚고 넘어간다.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해보는 경험, 그렇게 성취감을 느끼고 칭찬받아 보는 경험, 그런 경험을 많이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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