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홍콩 민심에 친중파 의원들 줄줄이 낙선…시진핑 지도부에도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5일 15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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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홍콩 주룽 공원 수영장에서 관계자들이 투표함을 옮기고 있다. 2019.11.25/뉴스1 © News1
24일 홍콩 주룽 공원 수영장에서 관계자들이 투표함을 옮기고 있다. 2019.11.25/뉴스1 © News1

“불만의 쓰나미가 홍콩 전체를 휩쓸었다.”

홍콩 유력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5일 야당인 범민주파의 홍콩 반환 이후 사상 첫 구의원 과반 차지이자 예상외 압승 결과를 전하며 중국 중앙·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는 홍콩의 성난 민심이 6개월 가까이 이어진 시위 사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경청하지 않은 홍콩 정부를 심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위대 진압만 강조해온 중국 중앙 정부에 대해 홍콩을 존중해달라는 강한 불만의 메시지도 깔려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수록 홍콩에선 뿌리 깊은 공포가 커진다는 뜻이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한계가 있는 구의회지만 홍콩 유권자들이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선거를 통해 구의회 권력을 교체한 ‘선거혁명’이어서 홍콩 정국을 또 다른 소용돌이로 이끌 수 있다. 이런 민심 표출에 홍콩 사태를 국가안보·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고수해온 중국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 민심은 “중국의 홍콩 통제에 불만·공포”

18개구 구의회를 장악했던 친중파 의원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구의원 선거는 정치와 거리가 먼 지역현안 선거라고 주장하다 대패한 친중·친정부 성향의 건제(建制)파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입법기관) 대의원이자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을 겸하고 있는 거물 마이클 티엔도 자신의 지역구인 췬안에서 낙선했다. 췬안은 반중 반정부 시위가 격렬했던 지역. 그는 “정부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7월 시위대에 대한 백색테러를 옹호한 뒤 시위대의 혐오 대상이 된 친중파 후보 주니어스 호(입법회 의원 겸임)도 낙선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패배가 낯설다”는 글을 남겼다.


반면 범민주파 지지자들은 25일 새벽 선거구별로 개표 결과가 발표돼 승리가 확정될 때마다 선거 사무소와 거리 곳곳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샴페인을 터뜨리기도 했다. 당선된 범민주파 후보들은 “홍콩 시민의 목소리는 크고 분명했다. 자유를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강경 대응 시진핑 지도부에도 타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홍콩 시민들과 분리시키는 전략을 취해온 시 주석 지도부도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시위에 참가하면 지도부 권위에 도전하는 폭도가 되니 시위대를 지지하지 말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홍콩 민심이 시위대를 지지하는 것이 확인된 이상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온 중국 정부의 홍콩 대응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권자들을 폭도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지도력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콩 현지에서는 중앙 정부가 캐리 람 행정 장관 교체를 고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건제파들은 정부의 무능 때문에 대패했다며 람 장관을 원망하고 있다. 람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며 “진지하게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홍콩 대학의 한 교수는 “중앙 정부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사퇴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행정장관 선출 선거인단에 변수로

범민주파의 압승으로 인한 정치적 파장은 이번 선거에 그치지 않고 내년 9월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 2022년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대가 요구해온 행정장관 직선제(보통선거) 등 정치개혁 요구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구의회 다수당은 행정장관을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을 독식한다. 이에 따라 건제파가 차지했던 구의회 선거인단 117명이 고스란히 범민주파에게 넘어간다. 2015년 람 행정장관이 당선될 때 친중파 선거인단이 726명, 범민주파가 325명이었다. 이번 선거에 따른 선거인단 변동을 반영하면 친중파 609명, 범민주파 442명으로 격차가 줄어든다. 여기에 의원 전원이 선거인단이 되는 입법회 선거에서도 범민주파가 선전하면 격차가 더 줄어들 수 있다. 입법회는 70석 가운데 35석을 선거로 뽑는다. 친중파 우세의 선거인단 구조를 극적으로 바꾸기 어려워도 간접선거의 불합리성을 제기하며 직선제를 요구할 선거혁명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홍콩=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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