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석 감독 “영화 ‘헤로니모’, 쿠바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1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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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영화 ‘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이 영화로 여러 영화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 아프리카계 청소년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라고. 그때 느꼈습니다. ‘헤로니모’의 이야기는 모든 이민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요.”

체 게바라·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함께 한 인물. 쿠바 내 한인 사회의 구심점. 한국 동포 헤로니모 임(한국명 임은조·1926~2006년)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의 21일 국내 개봉을 맞아 전후석 감독(35)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났다.

코트라 뉴욕 무역관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전 감독은 2015년 휴가차 우연히 찾은 쿠바에서 헤로니모의 가족들을 우연히 만나며 그의 삶에 매료됐다.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의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헤로니모는 아바나대 법학과를 졸업한 쿠바의 첫 한인 대학생이었다. 쿠바 혁명 직후에는 산업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지냈고 인생의 후반부에는 쿠바 한인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쿠바에서도 평생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간 헤로니모의 이야기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를 체득하며 자란 전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 밖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건지 늘 많이 생각했어요. 학부 시절 연변과학기술대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시절도 있었고, 법대에 다닐 때는 브라질에서 인턴십을 한 적도 있었죠. 어느 곳에서든 한인 교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에 눈을 떴는데 쿠바에 놀러가서 헤로니모의 삶을 듣는 순간 그 모든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 ‘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영화 ‘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학부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실전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자발적으로 도와준 친구들의 재능기부로 시작한 작업이 3년에 이르자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 등을 통해 개인 후원을 모집했다. 전 감독은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 작업에 매달렸다.

선조들이 떠나온 땅은 분명 하나의 한국이었지만 광복 이후 조국은 이념으로 분단됐다. 공산주의 혁명을 겪은 쿠바 한인들은 늘 ‘당신들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안고 살아야 했다. 전 감독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종착점은 애국심이나 민족주의가 아닌 인본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헤로니모가 그의 삶을 통해 준 메시지는 나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삶의 목적을 ‘한국인이 되는 것’에서 찾는 셈이지요. ‘나는 네가 누구든, 어디서 왔든 너를 포용할 수 있다’는 정신입니다.”

영화에 소개된 헤로니모가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의 정신을 그대로 압축했다. 전 감독은 “보석 같은 편지 내용 중 무엇보다 ‘조국’에 대한 문구가 감동적이었다”며 “조국이라는 건 헤로니모의 표현대로 새벽녘에 들리는 새소리,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농부들의 땀, 선조들의 우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로 전 세계를 이동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민을 둘러싸고 갈등과 반목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이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샌디에이고 아시안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공산주의에 반대해 쿠바를 떠나 미국에 정착하신 분들을 뵌 적이 있어요. 쿠바 내 한인들과 오랜 기간 마음의 벽을 쌓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그분들이 저를 안아주시더군요. 이념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알려줘 고맙다는 이야기와 함께요. 모든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좀 더 열린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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