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파문 英앤드루 왕자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 발표

  • 뉴시스
  • 입력 2019년 11월 21일 0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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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을 부인하는 뒤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던 영국왕실의 앤드루왕자가 20일(현지시간) 자신이 악명 높은 미국의 성추문 재벌과의 교유했다는 이유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 앤드루왕자는 이 날 발표문에서 자신의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계가 왕실의 자선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면서 공식적인 임무를 모두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에 관한 이런 변화가 임시조치인지 영구적인 결정인지는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앤드루왕자는 사퇴에 관해서 이미 여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밝히고 앞으로 수사기관의 어떤 조사에 대해서도 기꺼이 협조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왕자의 성매매 의혹 스캔들은 지난 주말 TV인터뷰 이후로 오히려 엡스타인과의 추문에 대한 의혹만 더 키웠고 영국왕실을 뒤흔든 더 큰 후폭풍으로 인해 결국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방송이 나간 뒤 영국의 기업이나 대학들이 왕자가 세운 자선단체 ‘피치@팰리스’와의 관계를 끊은 데 이어 호주 대학들도 협력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20일 AP와 AFP등 외신들도 전했다.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 위치한 로열멜버른공과대학(RMIT)과 퀸즈랜드의 본드 대학은 “내년에 이 단체와 함께 일할 것을 검토했지만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본드대 대변인은 “최근의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대학은 더 이상 그곳과 연관을 맺지 않으려 한다”며 지난 10월에 끝난 계약을 경신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왕자는 지난 8월 미국 맨해튼 교도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절친한 관계였다. 그의 사망 전날 공개된 법원 문서에는 버지니아 주프리라는 여성이 자신이 엡스타인의 성노예였다고 말한 녹취 증언 내용이 들어 있었다.

주프리는 엡스타인이 약 20년 전 10대였던 자신을 ‘성노예’로 삼았고 앤드루 왕자를 비롯해 저명한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 앤드루 왕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의혹을 부인했지만 그 여성이 증거물로 제시했던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해서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 후 언론들은 그가 후회도 반성의 기미도 없다고 더 거세게 비난했다.

호주의 머독 대학과 스탠다드차타드 등 영국계 기업과 대학들 역시 이에 앞서 더 이상 왕자나 그의 자선단체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앤드루왕자는 자신과 엡스타인에 관한 사연이 왕실의 사업을 망치고 있다며 “ 이 가치있는 사업은 그 동안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많은 자선기관과 단체들과의 협조아래 진행되어왔다”고 밝히고 스스로 사퇴를 선언했다.

왕자는 자신이 억만장자 투자가 엡스타인과 관련을 맺은 것을 후회한다며 대부분 미성년 성매매 피해자인 엡스타인의 피해여성들에게도 “깊은 동정을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그는 엡스타인과의 교유에 대해 후회를 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20일 발표된 성명의 내용은 앤드루왕자와 측근들이 이제야 그 방송인터뷰가 얼마나 역풍을 몰고왔는지를 이해했다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왕자는 성명에서 “엡스타인의 자살은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의문을 특히 피해여성들에게 남겼다”면서 “그 동안 이 사건에 영향을 받고 어떤 형태로든 해결을 원했을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을 표한다”고 말했다.

영국 왕실의 연장자들이 모두 그렇듯이 앤드루 역시 여러 자선단체나 민간 공익단체의 대표나 후원자로 이름을 빌려주면서 왕실의 모든 형태의 자선사업에 관여해왔다.

왕자가 엡스타인 관련 성추문에 휘말린 것은 오래 전부터이며, 2011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서 조사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번 방송인터뷰 뒤처럼 강력한 반발과 비난에 봉착한 적은 드물었다.

방송인터뷰는 왕자가 당시 16세로 엡스타인의 성매매 희생자였던 버지니아 주프레와 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에 집중되었지만 앤드루왕자는 이를 부인했고 그의 답변들은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주프레는 앤드루와 세번이나 만나 관계를 맺었고 그 가운데 두 번은 자신이 17살 때였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비판자들은 앤드루왕자가 인터뷰로 인해 아주 몰상식하고 거만한 인물로 비쳤으며, 특히 부호나 권력자의 갑질에 대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보복이 일상화된 시대에 너무 어리석은 태도를 내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왕자는 자신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엡스타인과의 옛 우정과 친분을 생각해서 그와의 교유를 변명하고 보호하려 들었지만 역효만 냈다.

앤드루왕자가 이번 발표로 적어도 한 동안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것은 1936년 에드워드 8세 국왕이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부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왕위를 버렸던 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친 조지 6세가 왕위를 승계했고 왕실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플리머스 대학 역사학과의 주디스 로우보텀교수는 영국 역사상 에드워드 8세의 퇴위나 앤드루왕자의 공직 포기 선언에 맞먹는 사건들은 무수히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앤드루가 빨리 물러나지 않았다면 이번 왕실의 위기는 “더욱 더 증폭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일로 가장 상심이 큰 것은 93세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일 것”이라고 말했다.

앤드루왕자가 발표한 결정에 대해서 여왕은 20일 저녁 공식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여왕은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어떤 말도 입밖에 낸 적이 없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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